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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는 여름 Oct 02. 2022

임레 케르테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불수의적 고통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임레 케르테스, 이상동 옮김

민음사 펴냄

 나는 학살자들, 삶을 훼손한 자들이 큰 소리로 스스로를 생명의 길로 선언하는 것을 질리도록 봐 왔다, 그런 일들은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어 내 안에서 반항심을 다시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내가 말했다, 삶을 훼손하는 자들 때문에 삶을 혐오하게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그보다 더 처참한 일도 없다고, 아우슈비츠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났다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증은 틀림없이 내 아내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
127쪽


 혹자는 신과의 거래, 즉 대가와 응답을 바라고 기도를 한단다. 그러나 마음의 위안, 자기 반성과 같은 독백도 기도가 아닐까 싶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가 그렇다. 화자는 삶의 가짓수를 두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부정하는 마음의 소리에 휩쓸리듯 쓸려간다. 그래서 그런지 숨 한번 쉬지 않고 쉴새없이 이어지는 독백, 의식의 흐름은 왠지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화자는 무엇에 쫓기고, 어째서 끊임없이 "안 돼!"를 외치는 것일까? 이 소리없는 공명, 허공에 대는 외침은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한 화자의 최후의 수단이다.​


"안 돼!" 절대로 나는 다른 한 인간의 아버지, 운명, 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돼!"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일을 또 다른 한 아이가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안 돼!" 내 안에서 무엇인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어린시절을 그에게 - 너에게 - 나에게 겪게 해서는 안된다, (...)
130쪽

 화자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지만, "안 돼!"와 같은 강력한 부정어로써, 절대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한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보낸 화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맴도는 질문들을 놓지 못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훼손된 삶, 고통의 연속. 태어나는 것 조차 선택할 수 없었는데 삶의 방식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니, 말도 안되는 비극이다.

 화자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모자라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경험들로 어떤 결핍이 생겨버린 것이 분명하다. 화자는 "나"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수반된 고통이 모두 불수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삶은 의지대로 고통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완벽히 깨달은 화자는 "안 돼!"를 반복한다. 그래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제삼자가 받을, 운명처럼 다가온 고통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화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닮은, 맑은 눈망울의 아이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화자의 양가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반본능이 자신의 본능으로 정착하기까지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임레 케르테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화자는 저자 본인을 의미한다. 머릿 속으로 행복한 미래와 인간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떠오를 때면 외치는 "안 돼!"는 그가 겪은 비극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어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희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더 이상의 고통을 멈춘다. 하지만 머릿속을 맴맴 맴도는 조건문, "만약에"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안 돼!"의 비극은 더욱 부각된다.


 나는 알게 되고, 그리고 동시에 보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꼬불꼬불한, 얼마나 형형색색의 실로 얽혀 있는지를, 이 실들을 (그 당시엔 아직 미래의, 지금은 이미 과거의) 나의 아내, 오래전 나의 연인, 내 침대에 누워서는 자신의 비단결 같은 머리를 내 어깨 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 내 연인의 허리와, 가슴과, 목 주변에 드리운다, 난 그녀를 엮어서는, 나 자신에게 묶어 둔다, 빙빙 회전하며,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 두 명의 민첩한 서커스 공연자는 나중에 성미가 고약한 관객, 실패 앞에서 죽은 듯이 창백하게, 빈손으로 굽실거린다.
67쪽

 화자의 양가감정을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라 느껴진 67쪽이다. 이미 원천 차단한 행복 중 하나인 그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제외하면 전 아내와의 만남은 인간으로써 행복을 추구했던 유일한 순간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전 아내는 화자 본인이 가장 바랐던 운명이었다. 그래서 유독 전 아내가 언급되는 장면에는 연속적인 조건문들이 등장한다. 만약 내 어린 시절이 조금 더 행복했더라면, 만약 그 카페에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녀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두 명의 서커스 공연자는 화자와 전 아내, 성미가 고약한 관객은 화자 본인이 극복할 수 없었던 운명을 의미한다.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주지만 결국 운명 앞에 굴복하는 모습이다.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두 유대인의 사랑,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화자는 결국 저자 임레 케르테스처럼 반본능을 거스르지 못했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가슴에 품고 홀로코스트에서 겪었던 고통에 매몰된 채 "안 돼!"를 외치지 않았을까. 종종 떠오르는 조건문과 강한 부정어를 동시에 쥐고 있는 그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고통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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