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00일의 썸머』 Review
이하의 컨텐츠에는 스포일러가 한가득
『500일의 썸머』는 철저히 톰이 하는 사랑의 동선을 추적한다. 톰의 기억을 따라가는 플롯과 갑작스런 뮤지컬 연출, 상상과 현실을 두 개의 프레임으로 병치하는 비교형 연출 등의 영화적 기법을 총동원해 온통 남자가 바라보는 사랑의 면면을 제시한다. 철저히 목적적합한 구성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볼 때마다 그 다가옴이 다르다. 처음에는 톰에 나를 대입하여 감상하고, 다음 관람에는 톰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 보게 된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 감상으로는 『500일의 썸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문자 그대로 ’500일의 썸머’만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저릿한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그 이면에 숨겨진 ‘썸머의 500일’을 발견했을 때, 진정으로 완성된다. 달리 말해, ‘과연 톰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썸머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라는 물음이 감상의 수면 위로 올라올 때, 흐릿하던 둘의 서사가 비로소 온전히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일관된 분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널리 인식되는 둘의 스탠스 변화, 즉, ‘500일의 썸머’의 인물 분석은 다음과 같다.
썸머는 현실론자에서 운명론자가 된다. 톰은 운명론자에서 현실론자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시선을 새로이 하여, ‘썸머의 500일’의 인물 분석을 해본다면, 둘의 성격 변화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인다.
썸머가 운명론자에서 현실론자가 된다. 톰이 현실론자에서 운명론자가 된다.
결국 쌍방의 절절한 서사로 고무뜨기된 『500일의 썸머』가 어루만지는 사랑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사랑이란 현실 속 상대에게
나의 운명을 부탁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