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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hyeon Rhee Jan 15. 2020

인간이란 추악하기 그지없는 짐승에 대하여

영화 『라쇼몽』 Review

이하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한가득 들어있습니다.



93년 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세상을 떠났다.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다이쇼 시대를 호령한 일본 최고의 작가다. 그는 하루 흡연량이 열 갑에 달할 정도로 스스로를 불살라 절륜의 작품을 내놓았다. 비상한 작품을 위해서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던 그였다. 류노스케는 발광을 동반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어느 천재가 그러했듯 끝내 자살하기에 이른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꼽는 것은 라쇼몽이다.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에 의해 영화로 제작됐고, 1950년에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라쇼몽은 ‘인간은 정직할 수 없고, 정직은 증명할 수 없음’을 주제로 한다. 영화에서 충돌하는 네 인물의 증언은 끝내 진위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과 엔딩에서 그에게 신뢰를 주는 승려에게 던지는 나무꾼의 난해한 미소가 이를 설명한다.



라쇼몽은 곡성보다 복잡하면서도 홍상수보다 선명한 물음을 던진다. 사무라이의 사인에 대한 진위를 판별할 수 없지만, 네 인물의 이야기가 모두 일리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모순관계를 물고 있다. 여기서 라쇼몽의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한다. 바로 이기주의다. 무당에 빙의된 사무라이는 남자로서의 체면을, 아내는 스스로의 절개를 증명하기 위한 방어기제로서의 억울함을, 나무꾼은 자신이 저지른 도둑질의 면죄를 각각 주장하기 위해 사건의 진위는 뒤로 한 채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바야흐로 70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라쇼몽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액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존 윅을 울리는 리얼리즘이 그득한 사무라이와 도적의 대결은 라쇼몽의 자랑이다. 라쇼몽의 섹시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으로 범벅된 미장셴과 원작의 비장함을 고스란히 담은 카메라 무빙까지 하나 놓친 것이 없으니 말이다.



7인의 사무라이, 소나티네와 함께 최고로 꼽는 일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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