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이 망쳐버린 대한민주공화국의 현주소
※ N번방 사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던 당시에 타 매체에 포스팅했었던 글을 브런치에도 업로드합니다. 첨부된 사진들의 저작권은 모두 국민일보에 연재된 N번방 추적기에 있습니다.
주말동안 과장 없이 수십 명의 지인들에게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청원 링크와 관련 기사를 받았다. 나는 국민청원을 경멸한다. 지인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다. 정권이 출범한 후 3년이 지났지만, 모든 이슈를 독점하던 국민청원이 해낸 것은 단언컨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청원이 등장한 이후로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었던' 그리고 '주도적으로 해내야 했던' 노력의 기회들을 그 제왕적 제도 따위에 빼앗겨버렸다.
대한민국은 IMF 사태 때는 국민들이 장롱의 금을 꺼내놓던 나라였고, 태안에 기름이 유출됐을 때는 전국민이 달려가 기름을 닦았던 나라였고,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들었던 나라였다. 하지만 국민청원이란 제도가 등장한 이후로, 그 위대했던 국민들은 모조리 스마트폰에서 버튼이나 누를 줄 아는 병신이 되어버렸다. 나는 묻고 싶다. 국민청원 백만 이백만 그렇게 눌려대면 세상이 바뀌는가?
지금부터 가해자들의 미래에 대해서 알려드리겠다. 스스로가 버튼충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국가와 국민을 생각했던 민주시민이었는지 판단해보시길 바란다.
먼저, 가해자들은 신상만 공개될 뿐, 포토라인에 서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피의사실은 공표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지난 여름을 더욱 덥게 만들었던 전직 법무부 장관 덕이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법정에 가서 무죄를 받아내면 될 일이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 쪽팔리다고 인권침해라는 명목으로 시행령을 뒤집어 엎어버렸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만든 공소장 공개의 원칙을 무너뜨렸다. 덕분에 가해자 개새끼들은 그 알량한 인권을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그 극한까지 보호받게 되었다. 당신들이 지금 득달같이 요구하는 그 신원공개, 작년 여름에 법무부 장관이 행했던 그 횡포만 막았다면, 애초에 할 필요도 없었던 요구였다. 경찰이 연행하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공개되고도 남았을 거니까. 오늘 N번방의 기사를 찾아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보았을 것이다. 그 개새끼 얼굴 위에 덮여진 모자이크를. 이제 우리는 그 가해자들을 이춘재처럼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실물을 보지는 못할 것이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관한 피의사실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게 바로 당신들이 만들었거나 방임했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다음으로, 가담자들 대부분은 실제로 윤간에 참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강한 처벌을 받지 않을 확률이 높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그가 얼마나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는지와는 무관하게 법률로 이미 규정되어 있는 범위 안에서만 징벌을 받을 것이란 말이다. 우리 형법의 실정이 그렇다. N번방의 주류가 되는 20대들은 징역을 10년도 받지 않을 것이기에, 30대 초반 정도가 되면 다시 사회로 나올 것이 분명하다. 총책 갓갓은 00년생이니, 어쩌면 20대의 나이에 사회로 다시 방생될 수도 있다. 갓새로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 버튼의 용사들은 일사부재리의 굴레에 얽매여 아무리 떠들어도 무용지물인 조두순한테 분노할 줄이나 알았지, 제2의, 아니, 제26만*의 조두순의 탄생을 막지 못한 거다. 조두순한테 분노하며 떠들던 그 '고작 12년', 이렇게 또 26만 번 더 발생하게 생겼다.
한국 사회의 오작동은 이보다 더욱 심각하다. 단언컨대, 지금은 피가 끓어 노발대발 날뛰는 정의의 사도들 절대다수는 대법원 판결이 나게될 1-2년 뒤 이 사건에 대해 의식조차 못할 것이다. 내가 가장 치가 떨리게 유감스러이 여기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찰나의 시간동안 끓고 있는 그 분노 역시 모두 가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시끌벅적 했던 과거사건들의 결말을 아는 사람이 국민청원 버튼을 눌렀던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있을까. 강남역 사건 대법원 판결이나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대법원 판결, 그 결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 당신의 피를 끓이는 그 열기도 헛빵이란 것이고, 당신이 추구하는 그 정의감은 불구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국민청원 버튼은 당신을 불량품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처럼 아직도 조선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징벌만 할 줄 알지, 진정한 해결을 할 줄은 모른다. 가해자를 처벌하면, 그로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해결은 아무것도 못한 채, 삼대만 멸해대던 그 개짓거리와 똑같은 짓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혹시 지금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가? 아니다. 당신은 아마 그럴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벌 주라는 거 말고 스스로가 다른 노력을 기울어본 적이 있는지. 과연 N번방 류의 사건이 과거에는 없었을까. 대표적으로, 양예원 사건**이 있다. 막대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시적으로는 동일한 양태를 가진 범죄였다. 그런데 이딴 빌어먹을 사건이 또 발생했다. 양예원 씨 누드 사진 촬영한 그 사람들 비난할 줄만 알았지, 스스로 어떡하면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까에 대하여 고민해본 적이 있었는가. 그걸 왜 내가 고민해야하냐고? 이와 같은 고민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민주사회의 주인이기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 적극적 고민이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에게 분노하는 것은 개나소나 할 수 있다. 그 분노는 아주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온당한 것임에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라는 것은 세상만사에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번 N번방 사태에는 합성사진을 통한 성희롱도 존재했지만, 대중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악행들은 따로 존재했다. 그것들은 칼로 알몸에 ‘노예’를 새긴다든지 질에 애벌레를 넣는다든지 하는 등의 천인공노할 악행들이다. 이런 류의 피해사례들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버틸 수 없는 결함을 책잡혀 위력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케이스들에 해당한다. 언론 보도에서 확인한 이들 피해자들의 절대다수는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소외에서 탈출하여 누군가의 온정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트위터 일탈계’에 빠졌거나 금전적 유혹에 이끌려 ‘고액 알바’라는 명목의 ‘성매매’의 덫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버튼이나 누르고 마는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고 술이나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와 진배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청원이라는 알코올을 멀리하고 위의 약자들을 근본적으로 구원하는 것에 온 기력을 쏟아야 한다. 징벌은 검경과 법원이 할 일이다. 징벌은 국가가 하는 거고, 문제해결은 우리가 하는 거다. 이와 같은 분업 구조를 정치적 용어로 좁게는 삼권분립 넓게는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즉, 징벌에 매도되어 해결을 위한 노력을 쏟지 못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직무유기의 누를 범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작태를 감히 " 0차 가해 "라 부르고 싶다.
우리는 ‘트위터 일탈계’에 누드사진을 올려야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소외된 사람들을 구원해야만 하고, 금전적 유혹에 이끌려 ‘성매매’를 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런 류의 사건을 대하는 가장 적확한 자세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신천지에 홀리는 등 악의 무리에 오도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사회적 약자다.
N번방과 신천지 류의 패거리들은 악의 소굴이었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자들의 수용소이었기도 하다. 악을 소탕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반쪽짜리도 되지 못하는 비루한 해결책이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뒤늦게 버튼이나 눌러대는 무책임에서 탈피해야한다. 약자 약자 말만 지껄이지 말고 선제적으로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약자를 약자로 취급하며 돈이나 주고 취업보장 해주며 예쁜 말이나 던져주는 식의 피상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때 되면 돈이나 쥐어주면서 그들을 계속 약자로 남게끔 내버려두지 말고, 그들 스스로가 직접 생산능력을 갖추도록 견인해줌으로써 더 이상 약자가 아니도록 하는 복지 사례가 있겠다. 그딴 돈 쥐어줘봐야 정치인들 폼 잡는 떡밥밖에 안 된다.
오늘은 이 성범죄 피해자들을 어떻게 구원해줄지 그리고 어떡하면 이와 같은 피해자들이 또 발생하지 않을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거다. 과거처럼 쉬운 것만 골라서 하지말고 오늘 하루만은 조금은 어려운 국민 노릇을 한 번 해보는 거다. 그게 바로 당신이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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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만이란 숫자의 정확도는 전달하려는 의도를 전달함에 있어 큰 의미가 없기에 그냥 나오는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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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양예원씨가 약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성을 파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계약사항을 초월하여 피해를 보았음은 분명하기에 양상은 분명 닮았다고 판단하여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