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뉴 노멀 (New Normal)
취준생들이 왜 공기업을 좋아하는 줄 아시는가. 인국공과 같은 공기업 취업시장에는 '투명한 정보' 아래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룰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내 애비가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아니더라도, 귀걸이를 낀 증명사진을 제출하는 망발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노력으로 돌파할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청년들은 공기업에 목을 매왔던 것이다. 대통령은 금주에 결국 본인이 청와대에 취업할 적에 공언한 ‘정규직 남발 잔치’를 실행에 옮기고야 말았다. 나랏님 체면 한 번 차리자고 우리 청년들은 그 능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건 뭐, 청년들을 변태 술집 종업원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이토록이나 용솟음 치는 박탈감은 '공부'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에 입사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전대미문의 일자리 배급쇼를 몰랐기에 인국공 입사를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들 역시 박탈감 아우슈비츠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인국공의 복지와 워라밸을 포함한 후생을 누리고 싶었음에도, 그 ‘후생’이 노력을 증명한 자의 것이어야 한다는 룰에 따라 겸허히 그것을 포기한 그 사람들의 억울함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가 지상 최고의 대의이며, 모든 취업의 근본이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다지도 엄청난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느 누가 그 기회를 놓쳤었겠냐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매불망 정규직으로 전환될 그 "비정규직" 자리만 바라보고 있었겠지. 취준생 그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이 선택한 ‘인국공 도전 포기’란 기회비용이 이토록 거대했을 줄 말이다.
공정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정보의 투명성'이다. 우리가 왜 어느 장관의 딸에게 분노했었는가. 애비 잘 만나서 시험도 안 치고 꽁으로 의전원엘 들어가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정답은 아니다. 우리 가재 붕어 개구리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던 '서울대 로스쿨 인권법 센터 인턴'과 '단국대 의대 정교수와의 의학논문 작성' 등의 특급 스펙들을 그 장관의 딸은 정보의 비대칭성 속에서 쌓아왔다는 것에 박탈감을 느낀 것이다. 우리 청년들은 "와, 애비 잘 만나면 저런 어마어마한 스펙 밥상이 차려지는구나." 하는 정보계급의 격차에서 박탈감을 느꼈었단 말이다.
철저히 사견이지만, 인국공 사태는 우리 청년들에게 그 장관 딸의 의전원 사태보다 더욱 절망적인 사태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 장관의 딸은 의전원에 가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우리 청년들은 꿈도 못 꿀 귀족으로 살았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 같은 일개 청년들이 어디 감히 서울대 로스쿨 형법 교수 출신의 법무부 장관의 공주마마의 삶을 꿈꿀 수 있겠는가. 우리 청년들은 그저 개천의 멋진 가재 붕어 개구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거 어떡하나. 이번 인국공 사태로 그 바람이 모두 짓밟혀버리고야 말았다. 약속된 게임의 룰만 잘 따른다면 손해볼 일이 없었던 우리의 개천 생태계가 무너져버렸으니 말이다.
우리 세대는 한반도 최초의 ‘사촌이 땅 사도 배가 아프지 않은 세대’다. 우리는 사촌이 이미 정해졌던 규칙에 따라 노력한 만큼 땅을 사길 바라는 세대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주고 싶다면,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으로 새로 입사를 하라고 하라. ‘공부’를 못하고 ‘노력’을 안 해도 훌쩍훌쩍 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관문’의 문턱을 낮추는 것 가지고는 뭐라하지 않을테니, 그 비정규직 출신들도 우리와 같이 경쟁하게 하란 말이다. 왜 그 대단한 연봉 5천만 원대의 수도권 근무 정규직이라는 엄청난 ‘후생’을 공짜로 갖다 주는가. 우리가 삥다리 핫바지로 보이는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호구의 탄생이 있다. 바로, 다른 회사에 비슷한 조건으로 비정규직 직렬에 취업한 청년들이다. 오늘 청와대 수석 나으리의 발언은 가히 가관이다. 대통령이 인국공에 방문한 지난 17년 이전의 비정규직들만 정규직으로만 전환해주겠단다. 아주 러시안 룰렛이 따로 없다. 그야말로, 우리 젊음날의 시간은 대통령의 방문 여부로 결정되는 홀짝 판치기 도박판의 판돈 정도로 전락해버렸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판치기에서 홀과 짝에 판돈을 걸듯, 우리 청년들은 대통령 각하의 기관 방문의 여와 부에 젊음을 걸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전제황권의 서막이다. 명나라 황제가 지방 행찻길에 구휼을 베풀었듯, 2020년 대한민국의 황제는 그 가시는 길에 일자리를 베푸시니 말이다. 황송스러워서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이제 우리 청년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 황제 폐하의 스케줄이 되었다.
박탈감 아우슈비츠에 갇힌 저주받은 존재들은 이만하면 빈틈없이 논의한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나치 게슈타포의 일원이라도 된 듯 설쳐대는 꿀단지 속 푸우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 싸가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푸우들의 발언을 보노라면, 그 경악스러움에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공부한 놈들이 병신이지, 서울대 나올 필요 없네”부터 “인국공 비정규직을 선택한 나는 천재야.”까지 쉼 없이 구동하는 그들의 몹쓸 구강은 앞서 언급한 차별과 혐오의 타겟이 된 존재들의 존엄을 골라골라 짓밟고 있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노동권’의 본질은 바로, 최고권력과 결탁하여 쉼 없이 표를 공급하며, 권력가들이 보장하는 공짜 울타리 속에 사는 노동귀족층들과 달리 ‘공짜를 누리지 못하고 노력이나 하는 천민’들을 하대할 “권한”이었다. ‘양반시대’의 재림이다. ‘유교’를 앞세워 ‘덕(德)’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던 인류 최악의 국가 조선의 조폭들이 ‘민주세력’과 ‘노동자’란 이름을 달고 시대의 주인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간의 말을 따르면, 최고권력층과 결탁한 이들을 ‘뉴 노멀(New Normal)'이라 부르더라. ‘공부’나 할 줄 알고, 규칙에 따라 ‘노력’이나 하던 우리 천민 머슴들은 끝없이 뉴노멀들에게 생산능력을 착취당해야 마땅하게 되었다. 그 수많은 비정규직 출신들의 연봉을 우리의 힘으로 매꾸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 비정규직 출신들도 생산 능력이 있다고? 기업이 등신인가. 그런 능력이 있으면 진작에 갖다 썼지. 걔들이 20대 초반 사회초년생도 아니고, 세상물 먹을만큼 먹어본 애들인데.
이상의 논조가 꽤나 공격적인지라, 친일극우 수구꼴통 일베충 소리를 들을까봐 덧붙인다. 나도 ‘정규직’에 준하는 ‘실력’과 ‘노력’을 쌓아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번 ‘정규직 배급 사태’는 그것과는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연봉이 무려 5천이다. 2-3년만 빠짝 모으면 자칫 벤츠도 살 수 있는 돈이다. 자고로, ‘권리’란 ‘최소한’의 어떤 것이지 않은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2-3년에 벤츠를 사는 것이 ‘최소한’의 일로 치부되었나.
내 헌법에 담긴 노동권의 고귀함은 십분 인정한다. 그런데 왜 그 고귀한 것이 인국공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회사와 이하 자회사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그 비정규직 인원들은 인국공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쓸 수 있는 인재들이지 않은가. 가령 경비에 관한 기능을 가진 비정규직들은 다른 업체에 가서 경비를 서도 되는 것이지 않은가. 전국에 ‘경비 능력’을 요하는 사업체가 한둘인가. 호텔이나 아파트, 회사 등에서 모두 ‘경비’ 능력자를 원한다. 그렇게 노동권이 중하면 정부가 나서 취업알선을 해주면 될 것 아닌가. 왜 하필 대한민국 최고의 공기업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그것을 보장 받느냐고.
황제 폐하, 도대체 이 나라를 어디까지 공짜로 만들어버릴 작정이신 겁니까.
언제까지 정의로움을 위해 규칙에 반하실 것이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