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봉준호 作) Review
봉준호의 필모그래피에서 악(惡)이 완승한 역사는 없었다. 악이 승리할지언정, 선(善)은 그 나름의 할당(割當)을 챙겨갔다. 하지만 <마더>는 달랐다. 그야말로 봉준호 필모 최대의 변종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마더>는 악의 완전한 승전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부터 <마더>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마더 역을 분한 '김혜자'를 원톱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김혜자'의 배역은 이름이 없다. 그저 도준(원빈 役)의 엄마일 뿐이다. 이는 김혜자를 '이름' 아래 규정되는 특정 개인으로 두지 않음으로써, 감상을 시작하는 우리 앞에 '마더'라는 심볼만을 남겨두기 위한 봉준호의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집중한 '마더'의 상징은 다음 두 가지다.
'보호자'로서 마더 그리고 '여성'으로서 마더
포스터부터 시작하여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부각되는 상징은 전자다. 세상 모두가 아들 도준(원빈 役)에게 살인자라 할 때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는 외침에서 시작된 '마더'의 보호자로서의 면모는 세상 모두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할 때 진실을 숨기는 그녀의 침묵을 통해 화룡점정을 찍는다.
영화 전반부 도준이 여고생 아정을 살해했을 것이라 온 마을 사람들이 확신할 때, 모두를 적으로 두고서도 굴하지 않고 폭주하는 그녀의 투쟁은 신파적인 ‘보호자’로서의 면모 그 자체다. 아정의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들을 설득하는 모습, 사건 검증 현장에서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페이퍼를 돌리는 모습, 돌아선 경찰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수사에 나서는 모습 등은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아들을 지키려는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보여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이지 않은가.
하지만 봉준호의 영화가 우리가 예상한대로 흘러간 적이 있었던가. 영화 내내 끌어오던 봉준호와 관객 사이의 수상전(手相戰)은 살해 현장을 목격한 어르신과 마더가 마주하게 되면서 결판이 나게 된다. 기존 모성애 영화의 클리셰대로 흘러간다면, 도준의 완전결백이 증명되어야 하겠지만, 영화의 끝에서 밝혀지듯 결국 아정을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도준이다. 도준이 자신을 무심코 무시하던 아정에게 돌을 던져 복수하던 차에, 돌이 의도치 않게 그녀의 머리로 향하게 되어 그녀가 죽게 된 것이다.
아들의 결백을 믿고 있던 마더가 도준의 살인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를 마더가 우발적으로 살해함으로써 도준의 범행은 영영 덮이게 되는데, 이 클리셰가 붕괴하는 결정적 대목에서부터 우리 관객은 이 영화의 제목이 Murder가 아니라 Mother였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달리 말해서, 이 영화는 시종 마더의 감정선을 추적해 나갔을 뿐, ‘범인이 누구인가.’하는 의문은 맥거핀 아닌 맥거핀이었던 것이다. 결국 ‘범인이 누구인가.’의 굴레에서 탈출해 마더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 우리는 점점 마더를 개인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봉준호는 우리에게 마더를 개인화하기 위해 영화 곳곳에서 중의적 의미로서 사용되는 '잤다'라는 표현을 넌지시 던져왔었다. 이 표현은 '근친상간'이라는 절대금기를 관객으로 하여금 떠올리게 만드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레토릭은 '마더'의 개인으로서의 여성성을 부각시키게 된다. 이처럼 봉준호는 여러 개의 밑밥과 수 차례의 당김질 끝에 이동한 관객의 시선은 일반화된 '마더'의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마더'의 폭발에 집중하게 되고, 우리 관객들은 이 위대한 '마더'라는 서사는 결국 모성애의 탈을 쓴 자기애의 폭주가 종국까지 끌고 왔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마더>의 진면목은 '여성'으로서의 '마더'가 감상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그녀의 온갖 쟁투들은 동시에 그녀를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마더의 면면은 숭고(崇古)가 아니라 비장(悲壯)이었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