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싫다...
눈이 뜨였습니다. 왜냐하면 방정맞은 알람음이 저를 괴롭히기 때문이죠. 그 방정맞은 알람음이 뭐가 그렇게 듣기 좋은지 3분 간격으로 빼곡히 맞추어져 있는 알람음 하나하나 음미하며 이불에 미적거리다가 결국 일어납니다. 삐걱거리는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아침의 사다리는 체감상 번지점프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뛰어내리기 싫은 사람처럼 질질 끌려가듯 사다리를 내려오니 벌써 6시 30분입니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30 뿐이기에 머리를 감으면서 이를 닦고 얼굴을 스쳐가듯 세수를 하며 서둘러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지갑, 사원증, 핸드폰을 챙기고 나옵니다. 이 모든 행동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항상 아침마다 이불속에서 조금만 덜 뒹굴고 준비할걸이란 생각을 하지만 내일의 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을 알기에 체념하며 현관문을 나섭니다.
현관을 열고 나오면 방안과는 다른 차가운 복도의 한기가 온 몸을 감쌉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아파트의 복도는 항상 서늘하고 무엇인가 튀어나올 거 같아 긴장감이 감돕니다. 하지만 제일 긴장되는 상황은 제가 이렇게 멍하니 있다가 지각을 하는 거겠죠....
정신을 차리고 건물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차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는 사거리로 갑니다. 사거리에 도착하면 제가 근무하는 병원이 보이고 형형색색 엇갈려있는 신호등, 그 신호등에 의지하며 위험한 차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위험한 차도의 주인 자동차들이 있습니다. 가끔 인터넷 기사를 보면 술에 취한 운전자가 사람을 치고 갔다는 소식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하지만 역시 지각이 더 무섭기에 서둘러 좌우를 살피고 횡단보도를 건너갑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 떨어진 낙엽을 정신없이 밟으며 걸어가다 보면,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던 병원이 커다랗게 다가오고 저의 출근시간 역시 다가옵니다. 항상 바삐 움직이는 구급차를 지나 1층 로비에 도착하면 사원증을 보여드리고 발열을 체크합니다. 이 관문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마음이 풀려 축 늘어진 채 아침의 피곤이 묻은 걸음걸음을 합니다. 희미하게 지문이 묻어 번호가 유추되는 도어록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가 불을 켤 때면 사무실에서의 하루가 밝아온 것 같습니다. 책상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습니다. 어제 얼마나 빨리 집에 가려했는지 널브러져 제멋대로 있는 슬리퍼를 신고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합니다.
의자에 앉는 순간 ‘아 눕고 싶다.’라는 강렬한 생각이 뇌를 지배합니다. 네 흔히 말하는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현상입니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있으면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부터 부쩍 누워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진득하게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을 증명하는 게 바로 앞에 쪽만 헐어 있는 책들이었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별것도 아닌데 일 벌여 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쭉 늘어뜨려 버린 후 편식쟁이처럼 맛있는 부위만 쏙쏙 빼먹고서는 입을 닫아버립니다.
처음에 부모님께 ‘뭐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얼마 뒤에 ‘잘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재미없어서 안 하려고요. 해보니까 별로네요.’라고 대답마저 성의 없이 던져 놓았습니다. 그럴 때면 한숨을 쉬시면서 저를 흘깃 쳐다보시는 시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엄마 미안....)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벌려놓고 하지 않아도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지 않아서였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부모님의 따가운 눈총은 있었지만 ‘나 잘 꺼야!’하면서 절대적인 회피 장소 이불속으로 ‘슝’ 도망가면 되었기에 그래 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살 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책임을 회피하고 모른척하는 뻔뻔스러움만 늘어가다가 외면했던 책임감이 갑작스럽게 자취의 벨을 눌러 사회에 문을 열었습니다. ‘엄마 나 용돈 주세요!’라는 조건 없는 말 한마디로 돈을 벌었고, 먹고, 자고, 입고하는 모든 것들을 이불속 화초처럼 곱게 자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여러 가지를 재게 됩니다. 과연 내가 이 돈을 사용할 만큼 하고 싶은 걸까? 얼른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시간을 투자할만큼 하고 싶은걸까? 혹은 이 비슷한 걸 해봤는데 또 끝까지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돈이 너무 아까운데 등 이런저런 저울질을 통해 가볍고 알맞은 추를 찾아갑니다.
이제 회사생활을 1년 정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던 침대형 인간에서 점차 앉고, 일어나고, 걷고, 뛰기를 시작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 가진 무게는 부모님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가볍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무게는 그렇게 가볍게만 느껴지진 않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 또 움직이고, 대단히 큰 목표나 열정 없이도 다른 사람들 살아가듯 꾸역꾸역 살 수 있습니다. 저기 날아다니는 날파리들도 이유는 모르지만 바삐 살아나갑니다. 하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려는 의지는 굉장히 고귀하며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