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 지금은 전국 교통의 중심지로 아주 번잡한 곳이 되었지만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리기 전까지는 대체로 조용한 도시였다. 게다가 우리 집은 대전시 끄트머리의 변두리, 논밭이 끝없이 펼쳐진 그런 시골 동네에 있었다. 동네를 관통하는 신작로는 아직 포장 전이어서 차가 한 대만 지나가도 부옇게 먼지를 일으켜 공기를 분탕질을 쳐놓곤 해서 밖에서 반나절만 뛰놀아도 머리에 먼지가 하얗게 앉곤 했다.
우리가 다니는 국민(초등) 학교는 당연히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는데 검은색 타르칠을 한 나무판자를 가로로 층층이 겹 붙여 학교 건물 벽을 만들었다. 이 나무판자들은 지금은 보기 힘든 마감재로 흙벽에 견고함을 더하고 방수나 방충을 위해 덧붙여 놓았던 듯싶다.
우리 동네는 사는 모습이 고만이 고만이인지라 도시락 반찬도 누가 장아찌를 싸오면 누구는 고추장을 싸왔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그것이 당연한 듯 느끼면서 사는 게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5학년 어느 날, 학교 행정구역이 바뀌었는지 이웃 학교로 다니던 아이들 몇몇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희한하게도 전학 온 아이들은 모두 잘 사는 집 아이들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금방 친하고 금방 낄낄 대며 웃으며 그렇게 지냈다. 미옥이도 전학 온 아이 가운데 하나인데 훗날 이 아이는 나랑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게 된다.
하루는 미옥이가 자기네 친척이 미국에 사는데 이번에 한국에 들르러 왔다면서 그들이 가져온 선물에 대해서 오만 자랑을 해댔다. 자랑도 듣는 사람이 배경지식이 있어야 부러워하든지 시샘을 하든지 하는 거지 무엇을 자랑하는 건지도 모르는 경우에는 부러움도 싹트지 않는다. 미옥이는 이런저런 자랑 끝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온 친척이 인형을 가지고 왔는데 ‘그 인형이 서 있을 때는 눈을 뜨고 누우면 눈을 감는다’고 했다. 이게 말이나 되나?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싶어 나는 철저히 그 아이 말을 부정했다.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그 당시 인형이라고 하면 연필로 그림을 그린 팔 벌린 인형이거나 아니면 천을 재봉질해서 솜을 넣어 만든 인형이 전부였던 세상이었으니.
미옥이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웠던지 그다음 날 그 인형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날 우리 교실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이 촌놈들이 처음 보는 물건에 넋이 나갔다. 세상에 이런 인형이 있다니? 생애 처음 겪는 ‘문화 충격’에 우리는 모두 눈이 대접만 해졌고 우와우와 시끄러운 고함소리에 난리가 났다.
쉬는 시간에 미옥이는 인형을 들고 서 있고 우리 반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그 인형의 발가락 끝을 만져 보는 영광을 누렸다. 누가 쓰던 것을 가지고 왔는지 인형은 좀 낡아 있었지만 그래도 더럽히면 안 되니 살짝 만지는 척만 해야 했다. 아이들은 팔에 잔뜩 힘을 준 채로 인형 발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댔다. 하지만 미옥이는 끝까지 내가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뜨는 인형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박박 우긴 것이 아주 원망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때의 그 속상함이란... 나는 눈물이 왈칵 났다. 하지만 아이들 앞이라서 울지도 못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집으로 갔다.
언감생심 우리 집 형편에 그런 인형을 사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그 인형이 떠올랐다. 벽을 보아도 눈 감는 인형, 사방연속무늬 벽지의 천장을 보아도 그 무늬마다가 다 인형 얼굴로 보였다. 어떻게 하면 저 인형을 만져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져 볼 수 있을까를 내내 궁리했다. 그러다가 내가 만든 인형들이 눈이 띄었다. 종이에 양팔을 좍 벌린 인형을 그려 오려 놓고, 예쁘게 그려서 오린 공주 드레스도 입히고 치마저고리도 입히고 놀았지 않은가? 그래? 그럼 내가 한번 만들어 볼까? 온통 어떡하면 인형을 만들까 하는 생각으로 밥 먹는 일도 잊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나 조금씩 인형 만드는 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A4용지, 당시로는 16절 갱지를 옆으로 길게 펼쳐 놓고 사람 얼굴을 크게 그렸다. 눈은 한 일(一) 자로 그리고 칼집을 내었다. 입술은 스마일 표시로 크게 그렸다. 종이띠를 만들어 칼집 낸 눈 그림 사이에 쭉 잡아당겨 끼워 넣었다. 인형이 서있을 때는 종이띠 끄트머리를 앞으로 세워 놓았고, 인형이 누웠을 때는 종이를 방바닥에 눕혀 놓고 종이띠를 꼭꼭 눌러 접었다. 그러니 눈을 감는 인형이 되었다. 적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조금 갖고 놀다 보면 종이띠가 자꾸 칼금 사이로 쑥 빠져나가는 불편함이 생겼다. 궁리 끝에 종이띠를 T자로 만드는 것으로 해결했다. T자 종이 띠는 빠지지도 않고 눈까풀도 크게 표현할 수 있었다. 완벽했다. 눈감는 인형을 스스로 만들어 낸 그 기쁨은 지금도 생각날 만큼 크고 즐겁다.
궁하면 통한다, 궁즉통이라는 말은 원래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卽久)의 준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궁(窮) 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궁한 상황에 처해 이제까지와 달리 그것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지극함이 생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변해야 통할 수 있는 법이다.
결핍은 분발하게 하는 힘이 있다. 결핍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질이 부족해서 아주 고통스럽고 절망을 주는 정도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물질이 약간 부족한 가운데서 아이들도 상상력이나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얻는다. 좀 부족한 듯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