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도라고 하면 흔히 아이가 쓴 글을 놓고 어디가 잘 되었는가 잘못되었는가 하는 알려 주고 고쳐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글쓰기 지도의 일부분입니다. 글쓰기 지도는 쓰기 전 지도, 쓸 때 지도, 쓰고 난 후 지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쓰기 전 지도는 다시 생활지도와 보기글 보여주기, 이야기 나누기 같은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활 지도입니다. 가치 있는 생활에서 가치 있는 생각이 나오고 가치 있는 글이 나오겠지요. 생활을 바르고 건강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글쓰기 지도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일들 가운데 하나를 글감으로 해서 글을 쓰면 정말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런데 글쓰기 시간에만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의 경우에는 아이의 생활 전반을 다 알고 지도하기란 쉽지가 않아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지요. 하지만 글쓰기 교사라면 적어도 어떤 하나를 꾸준히 가꾸어 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각 살리기, 따뜻한 마음 갖기, 땅의 소중함 알기…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쓰기 전 지도의 두 번째는 이야기 나누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사와 아이들의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신뢰 쌓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아이들은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지요. 마음이 열리지 않으니 글도 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세 번째 덕목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말을 잘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잘 안 되는 때가 많습니다. 아이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어요. 한 아이가 ‘거지는 모든 것을 헌 것만 갖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어떤 거지를 보았는데 그 거지가 봉투도 뜯지 않은 ‘새’ 과자를 한 봉지 갖고 있는 거예요. 아이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엄마, 저 사람 거지야?”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그래. 너도 공부 안 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면 저렇게 거지되는 거야.”라고 했다지요? 아이는 그 사람이 거지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서 질문을 했는데 엄마는 다른 것, 거지가 되는 법을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아이들과 소통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글쓰기 시간에 아이는 이 말 저 말을 마구 하고 싶어 하는데 교사는 진도를 빨리 나가야 해서 그 말을 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글쓰기 시간에 와서 아주 귀찮을 정도로 이 말 저말 하는 아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겠지요. 그만큼 믿고 의지한다는 신뢰의 표시이기도 하거든요.
또 교사의 의무와 책임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하면 소통이 어려워집니다. 우선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말을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는 그 아이의 성격일 수도 있고 아직 교사에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는 몸짓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잘하는 방법, 사실 이것은 어른들에게는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숙제입니다.
보기글 보여주는 것도 좋은 쓰기 전 지도입니다.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을 즐겁게 읽으면서 ‘아, 저런 것도 글감이 되는구나.’하는 것을 배울 수도 있고 ‘저렇게 쓰니까 글이 재미있구나.’하는 것을 알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 자신도 그것과 비슷한 체험이 있다면 그것을 떠올려 글로 써 봐도 좋겠지요.
쓸 때는 집중해서 쓰도록 해 주세요. 말할 때는 신나게 글을 쓸 때는 조용히! 이렇게 알게 해 주면 좋겠어요. 그런데도 혼자 나부대면서 끊임없이 떠들려고만 하는 아이도 있지요. 특히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무렵에는 호기심이 하늘을 찔러 인생이 재미있고 즐거워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나만 재미있자니 억울(?)해서 옆자리 친구에게 같이 재미있게 놀자고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글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온전히 가르치는 사람의 몫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글로 쑥 들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것은 말로 이래라저래라 해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쓰고 싶은 마음을 확 불러일으켜 주어서 장난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것,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또 글을 쓸 때 아이들에게 맞춤법을 강요하지 마세요. 만약 여러분들에게 ‘대통령께 쓰는 글’을 쓰라고 하면서 ‘대통령’이라는 낱말은 한자(漢字)로 틀리지 말고 쓰면서 글을 써 보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의 생각이 어디에 가 있을까요? 대통령(大統領)이라는 글자에 온통 쏠려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맞춤법을 틀리지 말고 글을 써라 하면 아이들의 사고의 초점은 글자에 가 버리게 됩니다. 글쓰기도 익히고 맞춤법도 익히고…. 이것은 욕심입니다. 맞춤법은 국어시간에 배우면 되어요. 글 쓰는 시간은 즐겁게 글을 쓰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이가 쓴 글을 어른들이 읽어줍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래 잘 썼다.”라고 해주기도 하지만 “글씨가 이게 뭐냐? 맞춤법이 또 틀렸구나.” 하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썼는데 부모나 교사는 항상 무엇인가를 지적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오다가도 도망가 버립니다.
맞춤법을 정확하게 알게 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들 글을 봐주면서 빨간색 펜으로 죽죽 긋는 것은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고쳐준다고 해서 바로 다음부터 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빨간색이 주는 위협감이 커서도 아이 마음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지기도 합니다. 아이 글에서 고쳐야 하는 것이 있으면 아이가 쓴 글자를 다치지 말고, 가능하면 빨간색이 아닌 것으로 표시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고쳐줄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지 말고 먼저 인정하고 감동해준다는 마음의 자세로 읽어주세요. 칭찬할 거리를 먼저 찾으세요. 그리고 바르게 칭찬해줍니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칭찬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부분은 본 걸 그대로 잘 썼구나, 여기는 너의 따뜻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하는 식으로 부분 부분을 정확히 짚어서 구체로 칭찬해 줍니다. 그래야 아이도 '아하, 이렇게 쓰면 더 잘 쓸 수 있구나.' 느끼게 되겠지요. 칭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대충 칭찬해 주는데 아이들이 익숙해져 버리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 대해서도 쉽사리 만족해 버리는 딱한 버릇을 갖기 쉽습니다. 이런 버릇이 이어지면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했는데도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 버리기도 하거든요.
아무리 칭찬하려고 해도 칭찬할 데를 찾기 어려운 글도 있겠지요. 그럴 때라면 ‘이거 끝내느라고 아주 애쓰고 수고했구나.’하는 식으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서 칭찬을 하세요. 그러고 난 다음에 고쳐주거나 다듬어 줄 부분을 찾아 이야기해줍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칭찬하는데 익숙하지가 않아요. 칭찬에 인색한 것은 개인의 성격 문제도 있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주자학적 세계관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자학이 우리에게 전해준 좋은 점은 ‘삼가는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삼가다-조심한다는 뜻이지요. 말조심, 몸조심, 행동 조심…, 우리가 잘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자학은 우리에게 왜곡된 여성관과 폐쇄적인 아동관을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교과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은 그 뜻이 ‘무지몽매를 깨는 비결’입니다. 여기에는 주자학적 세계관으로 바라본 아동관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지몽매하기 때문에 깨우쳐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칭찬하고 인정하고 격려하고 보듬고 북돋우는 교육보다는 질책하고 나무라고 야단치고 훈계하고 바로잡아 주는 교육에 더 익숙합니다. 오늘부터라도 앞으로는 인정하고, 격려하고, 북돋우고, 칭찬하는 교육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작아요. 교육은 ‘흘러 넘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나무를 꺾었을 때 ‘얘야, 나무도 꺾으면 아프단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생명이 있는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이 말을 했을 때와 목숨이 있는 것은 다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말을 했을 때 그 느낌이 같을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이야기하는 ‘현상’은 같으나 ‘본질’은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의 사람이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말했다면 뒤의 사람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이 말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가르치는 사람 안에 이미 그것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흘러넘쳐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