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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May 02. 2020

아이들을 글로 쑥 들어가게 하는 방법

- 글쓰기 지도 이렇게 해보세요.


1. 내 이야기를 풀어놓아라

    

  “제가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자주 목욕을 하지 않았어요. 우스개 소리로 일 년에 두 번 목욕을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요. 그래도 목욕탕 수가 워낙 적으니 목욕탕은 항상 만원이었어요. 그래서 탕 둘레에 앉아서 목욕할 수 있는 날은 대단한 행운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런 행운을 잡은 날이 있었어요. 너무 기뻐하면서 탕 둘레의 자리에 앉아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어떤 아주머니가 오더니 “얘, 조금만 비켜 볼래?” 그러는 것이에요. 그래서 옆으로 조금 비켰더니 이 아주머니는 그냥 자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말아요. 저는 그대로 목욕탕 바닥에 떨어졌지요. 그런데도 그 아주머니는 모르는 체하고 푸파 푸파 목욕만 열심히 하더란 말이에요. 아무리 어른이지만 너무하다 싶었어요. 속상하고 억울했지요. 그런데도 “아줌마, 거기 제 자리인데요!” 하는 말을 못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억울하네요.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없으셨나요? 어른이라고 아이에게 마구 대해서 기분 나빴던 경험이라든가 아들 딸 구별해서 속상했던 일 같은 거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 보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아이들도 쉽게 자기가 겪었던 부당한 일을 떠올려서 말을 합니다. ‘물건을 바꾸러 갔는데 나 혼자 가니 안 바꾸어 주다가 엄마랑 가니 그제야 바꾸어주더라’, ‘버스 탔는데 어떤 아저씨가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이런 것들은 다 주장하는 글의 글감이 되겠네요. 생각보다 쉽게 글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은 주장하는 글을 쓰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말해보세요.’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사례’를 들으면 자기 생각을 떠올리는 게 훨씬 쉬워지지요. 이렇게 지도하는 사람이 먼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아이들이 좀 더 쉽게 글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2. 수업에 어려운 문패를 달지 말라.     


  수업에 '문패'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독서토론', '○○ 논술', '비판적 글쓰기’ 하는 식의 어려운 용어로 공부 목표를 붙여 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니 그럼 그런 것도 없이 수업을 하란 말이냐.’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십시오.

  어떤 커피 전문점을 경영하는 분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커피 전문점을 내기 위해서 유명하다는 곳은 다 다니면서 커피 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집 커피 맛은 어떨까? 저 집 커피 맛은 어떨까 하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집의  커피 맛이 다 같더라는 거예요. 특별히 맛있는 집도 없고. 그런데 한 번은 손님을 만나면서 어떤 집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자기가 일전에 분명히 다녀간 집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하다 그때는 왜 이 맛을 못 느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해요. 커피 맛을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너무 ‘정신 차려!’ 하고 마셨더니 미각도 긴장을 해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을 즐기자 미각도 다시 살아나서 그것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배울 때에 그것에 대한 목표를 너무 앞세우면 사람들은 우선 긴장을 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일수록 그 긴장의 정도는 커집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마음껏 생각하지 못하고 자꾸  어떤 틀에 갇힌 생각만 하게 됩니다.   큰 수업 목표 아래 지도안도 열심히 짜고, 오늘 써야 할 글의 특징도 아이들에게 잘 '설명'을 하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이들이 써낸 글들이 거의 밋밋하고 심심했다는 것을 아마도 경험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금 나는 배우고 있어.'라는 의무감이 아이들을 알게 모르게 눌렀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아무 준비도 없이 아이들을 만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준비와 계획은 좀 단단히 세우는 것이 좋겠지요. 오늘은 이것만은 꼭 알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 목표는 작고 소박할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같은 대화글 살려 쓰기를 목표로 했을 때에도 "오늘은 대화글 살려 쓰기를 배울 거예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이런 것도 잘 생각해서 쓰면 좋은 글감이 된답니다." 하고 설명으로 일관하는 것과, 대화글이 잘 살아있는 보기글 한편을 보여 주면서 "이 아이는 말한 것도 잘 생각해서 썼네요. 우리도 이렇게 한 번 해 볼 수 있겠지요? 자기가 말한 거나 들은 거, 오늘은 그것도 한 번 써봅시다." 하고 들어가는 것과는 같은 목적을 둔 이야기라 하더라도 접근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용어(말)가 어려우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해 마음이 불편해지지요. 마음이 불편하면 글도 잘 안 써져요. 예를 들어 ‘비판적 글쓰기’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이게 뭘 써야 하는 글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선뜻 감이 잡히나요? 보통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말로 수업 목표를 잡아 놓으면 가르치는 사람도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모를 때가 있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막연히 어려운 무엇인 것 같으니 어렵게 가르쳐야 할 것 같은 느낌만 있습니다.     

다음 중 뜻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은 어느 것인가요?     


독서토론/ 책 읽고 이야기 나누기

비판적 글쓰기/ 생각 견주어 보고 글쓰기

논거를 대라/ 알맞은 근거 밝혀 보자.

논증하라/ 내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자.

논술하라/자기 의견을 써 보자.     


  물론 양 편이 완전한 동치(同値)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하고 이야기하는 의미의 층위는 대강 이 정도가 아닐까 해요. 이끄는 말이 어려우면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긴장을 하게 됩니다. 말이 쉬워야 이해하기 쉽고 쓰기도 쉽습니다. 쉬운 말로 설명해 주세요. 아이들에게는 자기 수준보다 좀 어려운 말도 알게 해주는 일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글쓰기 시간에는 쉽고 편한 말로!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해져야 글도 마음껏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떤 주제를 향해서 간다는 긴장을 견뎌낼 수 있게 되고, 목적한 주제를 따라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접근해 나가는 것을 차차 배우게 됩니다.     

3. 보기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주라.     

  좋은 보기글은 읽는 재미를 느끼면서 나도 쓸 수 있다는 의욕을 일으켜 줄 수 있습니다. 보기글을 읽으면서 “와, 요기는 정말 실감 난다. 그렇지?” 하는 식의 사족을 달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당장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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