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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May 14. 2020

글을 꼭 이렇게 고쳐주어야
했을까요?

-초등 글쓰기 지도

                  

“교육의 진정한 의무는 아동들에게 성인의 언어를 지나치게 일찍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동들이 자기의 문장을 만들고 형태 화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다.” - 톨스토이     


  아이들의 글쓰기 방법은 어른들이 쓰는 방법과 뚜렷이 구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은 어른들과는 다르지요. 아이와 어른은 서로 다른 각자의 논리로 세계를 바라봅니다. 아이들 글을 지도하려면 이런 아이들만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크게 ‘자기표현’과 ‘의사소통’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아이들에게는 ‘자기표현’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차츰 소통이 잘 되는 글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글을 가장 열심히 읽는 사람은 어른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 글을 읽을 때 어른의 눈으로만 글을 보면서 아이들의 방식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너그럽게 아이들의 어법을 수용해 주면서 조금씩 어른이 희망하는 쪽(표준 어법)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이 빨리 표준 어법에 익숙하도록 끌어당겨서는 안 됩니다.


  글을 어법에 맞추어서 쓰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글쓰기를 힘들어하거나, 글을 쓸 때 주춤거리게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을 쓰는 ‘방법’의 문제로 어려워하거나 머뭇거리는 일이 없어요. 그저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쓰면 그만인 것이지요. 

  그렇게 글쓰기를 즐기던 아이들도 글쓰기 교육을 받을수록 아이들이 어른들의 기대와는 달리 글쓰기를 고통스러워하거나 멀리 하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이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너무 빨리 어른의 어법으로 글쓰기를 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고, 자기(어른들) 마음대로 마구 글을 고쳐놓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조급해할수록 우리 아이들은 글에서 멀리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쓴 글을 쉽게 읽습니다. 어른의 어법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른은 아이들이 쓴 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석해서 읽으려 합니다. 아이들이라고 아무렇게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글을 쓰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은 

    

① 아이들의 글쓰기 방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 말이 그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어야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② 아이들의 글이 표준 어법에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랐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이것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일이지 표준 어법에 맞추어 써내길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아이들 글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마구 각색을 해 놓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입니다.   

  

보기글 1) 

교훈을 주는 꿈

3학년 홍연경

  어제 난 무서운 꿈을 꾸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동생을 잃어버리는 꿈이었다. 

나는 전철을 타고 동생과 엄마와 어디를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동생이 엄마도 없이 어디를 또 가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우리가 엄마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를 찾는다고 혼자 집으로 가신 것 같았다. 나와 동생은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전철을 탔다. 꿈속이지만 전철 값이라도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생에게 

  “사람들이 많으니까, 조심해.” 

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전철에서 내려 옆을 보니까 동생이 없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동생까지 잃어버리다니. 한참 주위를 찾다가 다시 전철을 타고 동생을 찾으러 갔다. 무서웠다. 동생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어느 길거리에서 울고 있었다. 나도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울면 동생이 더 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을 달래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돈이 없었다. 

  “조금만 참아. 거의 집에 다 와 가.” 

  동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참아 주었다. 드디어 우리 동네에 왔다. 그런데 집으로 걸어가는 중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 

  "연경아, 연송아" 

  나도 울고 동생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연경아, 무서운 꿈 꿨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우리를 잃어버리고 혼자 집으로 가면 어떡해 

“엄마 우리 잃어버리지 마, 엄마 손 꼭 잡고 다닐게" 

엄마가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셨다.     

  꿈 이야기를 아주 잘 써 놓았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렸던 꿈을 꾸고 나서 엄마의 소중함을 더욱 잘 알게 되어 앞으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니겠다고 다짐하는 글입니다.



  하지만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글을 선생님이 ‘첨삭 지도’를 해서 새로 써 준 글입니다.  


   

보기글 2)

교훈을 주는 꿈

3학년 홍연경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은 나에게 교훈을 주는 꿈이었다. 

꿈의 내용은 나와 동생, 엄마가 어디를 전철을 타고 갔다. 

그런데 나와 동생이 어디를 가서 엄마가 그것도 모르고 혼자 집으로 가셨다. 

나와 동생은 엄마를 한참 찾다가 엄마께서 먼저 가신 것을 알고 남은 돈으로 전철을 탔다. 

나는 동생에게 “사람들이 많으니까, 조심해.”라고 주의를 주었다. 

전철에서 내려 옆을 보니까 동생이 없어서 한참 주의를 찾다가 전철을 다시 타서 동생을 찾으러 갔다. 동생은 어느 길거리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달래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돈이 없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와가.'' 

동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참았다. 드디어 우리 동네에 왔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중에 엄마를 만나서 집으로 왔다. 나는 이런 교훈을 얻었다. '가족은 소중하다.' 이제부터 동생을 때리지 않아야겠고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 (2004. 12)      



  초등학교 3학년이 보기글 2) 정도면 잘 쓰지 않았나요? 아니 잘 쓰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꼭 보기글 1)처럼 첨삭을 했어야 할까요? 

  요즈음 독서와 글쓰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글쓰기 지도에서 글 다듬기(첨삭) 부분은 선생님의 ‘감’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 지도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본인이 ‘글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아이 글에 ‘소설’을 써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이가 쓴 글에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단어로 대체해서 함부로 고쳐 놓아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아이의 말밭 안에 있는 단어로 대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글의 경제성 원칙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선명하게 읽힙니다. 가능한 한 그렇게 쓸 수 있으면 좋은 일이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의 글에서는 ‘경제적인 표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잘 나타내는 표현’이 좋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의미 잉여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일생 평생에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주아주 최초로 처음으로 보았다.”     

 이웃집에 불이 나는 것을 보고 3학년 아이가 쓴 글 가운데 한 문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일생, 평생’, ‘최초로, 처음으로’라는 식으로 같은 의미의 말이 중복되어서 나옵니다. ‘표준 어법’으로 보면 맞지 않는 문장이지만 이 군말이 오히려 그 아이의 벌렁거리는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멋대로 글을 고치고 다듬어놓으면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은 ‘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그것은 ‘아이들의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의 어법을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아이들 글쓰기 교육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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