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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Jun 06. 2020

아이들의 마음과 합치점을 찾으면서

글 쓰는 힘 기르기 ④


 자세히 쓰기 지도, 깊이 생각해 보기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면서 우리들이 가장 많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마도 "자세히 써라, 차분하게 정성껏 써라."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써온 글을 읽으면서도 먼저 '자세히 썼는가?' 하는 잣대를 들고 재보려고 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오히려 '자기가 쓰려고 하는 것을 환하게 쓰지도 못'하고 '자기 뜻이 아닌 어떤 것에 끌려가듯이 글을 쓰'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자세히 쓰기 강박증에 걸려 있다고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정말 자세히 쓰기를 해야 하는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자세히 쓰기 지도는 꼭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자세히 쓰기 지도 자체에 의문을 가질 일이 아니라 자세히 쓰기 지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의심해 볼 일이지요. 

  글쓰기의 목적이 표현과 전달이라면 그때 '상황'을 자세히 써야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 아이의 관심과 선생님의 관심      

  그런데 왜 자세히 쓰게 한 것이 오히려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잘 알 수 없는 글이 되게 만드는 것일까? 1학년 아이가 쓴 글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보기글 1) 

놀이터 

(1학년, 남) 

  107동 놀이터에서 동생과 놀러 가다 문경이네 들러서 문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거기에서 기어오르기를 했다. 처음에는 올라가다가 미끄러졌다. 자꾸 올라가다가 구멍이 뚫여(려)있어서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너(넣어)서 올라갔다. 그것보다 더 잘 올라가는 것은 벽을 잡고 올라가는 거다.(99.2.11)      


  자기 동생이랑 친구 동생(문필이)이랑 놀이터에서 기어오르기 놀이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어오르기 놀이는 경사진 나무 널판을 줄을 잡고 올라가는 것인데 아무것도 잡지 않고 올라가다 미끄러졌는데 자꾸 올라가다 보니 나무 널판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다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올라갔다는 것이지요. 또 그 옆 건물의 벽을 잡고 올라가니 더 잘 올라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설이 필요한 것을 보면 이 글은 읽고 나서 궁금한 부분이 많은 글, 자세하게 쓰지 못한 글입니다. 

  이 글을 읽은 선생님은 아이에게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았고 아이는 대답을 했는데 선생님이 궁금한 부분은 '기어오르는 방법'이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아이는 글을 다시 썼습니다.      

보기글 2) 

기어오르기 놀이 

  107동 놀이터에 동생과 가다가 문경이네 들러서 문필이를 데리고 갔다. 거기에서 기어오르기 놀이를 했다. 기어오르기 놀이는 나무판이 많은 미끄럼틀 같은 곳을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줄을 잡지 않고 손과 발을 이용해서 올라가는 놀이이다. 처음에는 자꾸 미끄러졌다. 그런데 몇 번 올라가다 보니까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올라갔다. 그것보다 더 잘 올라가는 방법을 손에 힘을 꽉 주고 발로 중심을 잡으면서 올라가는 거다. 그랬더니 잘 올라갈 수 있었다. 동생과 문필이는 자꾸 미끄러지니까 그냥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나중에 딱 한 번 올라갔는데 그 모습이 원숭이가 나무를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웃겼다.(99.2.12)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어오르기를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이 글은 그만 아이의 뜻과는 상관없이 기어오르기 방법을 설명하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앞에 글 보다 자세히 쓰느라고 애쓰기는 했지만, 도리어 산만하고 재미가 덜 한 글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자리를 선생님이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채 이야기를 이끌어 갔고, 그 이야기 후에 글을 쓰게 되니 아이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닌 것을 늘어놓았지 않았나 합니다. 1학년 아이가 이 글을 쓰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서 이런 글을 읽으면 무엇에 이끌려 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놀이하는 과정을 자세히 풀어썼으면 읽는 사람에게 그 모습을 환히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1학년인 이 아이에게는 어려운 일이지요.      

♧ 아이의 수준을 살펴서  

    

보기글 3) 

친구와 싸운 일 

안정근 (중앙 1)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다. 선생님께서 안 보셔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싸움이 커졌다. 그런데 구경꾼이 많이 와서 조금은 웃겼다. 그런데 내가 웃어서 졌다. (99.2.20)      


  자세히 쓰지 못한 부분이 많은 글이지요. 그렇지만 아이다운 표현이 느껴지고 글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듭니다. 친구랑 언제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어떻게 싸웠는지, 구경꾼들이 어떻게 모여들었는지 자세히 쓰기를 '요구'하자면 한없이 긴 이야기가 더해져야 하겠지만 이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게 아니라 '친구랑 싸우다 내가 웃어서 졌다'는 말이 아닐까요? 글 쓴 아이의 마음이 '웃어서 졌다'는 그 부분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1학년 아이니까 이렇게 써도 충분합니다.     

 

♧ 내가 이 글을 만났다면?      


보기글 4) 

콩나물 

김가슬(삼전초등 2) 

  며칠 전에 목욕탕에다 콩나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 살짝 보자기를 들춰보니 콩나물이 조금 자랐다. 조금 자란 콩나물을 보니 악보에 나오는 음표들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콩나물이 빨리 자라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콩나물국과 콩나물 무침을 먹었으면 좋겠다.(3.19 금 맑음)    

  

  이 글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지도하는 아이가 이렇게 썼다면 어떻게 지도하시겠습니까? ①자세히 쓰지 못했다. 콩나물이 어디에 담겨 있었나, 무슨 색깔이었나, 콩나물을 보고 나는 뭐라고 말했나 따위를 더 보태서 좀 더 자세하게 썼으면 좋겠다. ②어느 순간 본 것을 2학년답게 썼다. 

  어떤 것을 고르셨나요?

  이 글에 대해 이오덕 선생님은 " 이 글은 콩나물이 자라는 것을 잘 보고 썼습니다. '살짝 보자기를 들춰보니'라고 한 것도 잘 썼고 '악보에 나오는 음표' 같다고 본 것도 잘 되었습니다. 또 어머니가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반찬을 해 주니까 이 아이도 콩나물국과 콩나물 무침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평하십니다. 


  자세히 쓰기는 아이의 학년과 수준에 따라서 그 요구하는 정도가 분명 달라져야 하는 것인데도 가끔씩 교사의 욕심이 지나쳐서 아이에게 버거운 정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아이와 어떤 교감도 없이 이런 상투적인 질문으로 자세히 쓰게 한다면 아이의 마음과 합치점을 찾아내긴 어렵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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