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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May 29. 2020

꾸며내지 않고 사실대로 쓰기

글 쓰는 힘 기르기 ③



새벽길

             ○○○(초등 2년)

코스모스가 고개 숙이는 가을이 되면 엄마의 두툼한 세타 등 뒤로 힘겨운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엄마 갔다 올게…"

동생과 나는 또 하루의 무서운 밤을 맞이해야 한다.

엄마 새벽 시장길 뒤에 홀로 남겨진 동생과 나.

우린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지내왔다.

어느 날엔가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던 날 나는 한 가닥의 소망을 가지고 떠나시는 엄마를 붙잡고 싶었다.

"엄마 안가면 안돼?"

"엄마 가지 마!"

"너희들 속상하게 할래?"

"나 무서워"

"나 무서워"

그리고 우리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장사하지 마!"

그런 우리를 뿌리치고 새벽길을 또 떠나셨다.

그날 아침에 난 밥을 먹지 않고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학교에서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아휴~ 머리 아파!!"

그날 저녁에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규선아, 엄마 어깨에 파스 좀 부쳐줄래?"

난 퉁퉁 부운 얼굴로 엄마의 어깨를 슬며시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엄마의 피멍든 어깨 나는 또 한번에 후회를 반복해야 했다.

"엄마 미안해요!" "제가 철부지였어요."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주루루 내눈에도 눈물이 줄줄 그렇게도 밉게 느껴지던 새벽 시장 길, 오늘의 엄마의 새벽 시장 길은 우리의 꿈과 소망이 느껴지는 새벽 시장 길이다.

"우리 엄마 파이팅!"     

 


어느 지자체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상을 받은 글입니다. 새벽 시장 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다가 어머니가 파스 붙인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새벽시장 길‘에서 소망이 느껴졌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어떤 진실이 느껴지지 않아요. 실제로 어머니가 새벽 시장에 장사하러 나가는 것이 안타깝고 걱정이 되었다면 어머니가 무슨 장사를 하시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인데 이 글에는 그냥 막연히 ‘새벽 시장에 가신다.’고만 되어있습니다.

  구체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지요? 자기가 겪은 사실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잡아 보여주는 일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대상을 정확하게 그려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기본으로 닦아나가야 할 글쓰기의 수련과정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입말로 글을 씁니다. 2학년 어린이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말하듯이 쓰는 것은 글쓰기도 쉽고 읽기도 쉬운 아주 좋은 글쓰기 방법입니다. 날마다 쓰는 정다운 우리말로 쓰는 것이지요. 유식을 자랑하는 일부 어른들의 나쁜 습관에 물들지 않고 진실을 느끼게 하는 말, 가슴에 와 닿는 말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코스모스가 고개 숙이는 가을이 되면 엄마의 두툼한 세타 등 뒤로 힘겨운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첫 문장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엄마의 두툼한 세타 등 뒤로 또 다른 누구의 모습이 있다는 말일까요? 쓸 데 없는 말장난으로 자기가 할 말을 오히려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학년 어린이가 어머니의 모습을 글로 쓰면서 ‘세타 등 뒤로 힘겨운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이런 식으로 글을 쓸까요? 아닙니다. “엄마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슬프다.”정도로 쓰겠지요.     


▲동생과 나는 또 하루의 무서운 밤을 맞이해야 한다.     

☞어머니가 새벽 시장에 나가시게 되어서 동생과 남아있는 것이 무섭다면 ‘무서운 밤’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부터 날이 샐 건데요.    

 

▲엄마 새벽 시장길 뒤에 홀로 남겨진 동생과 나

우린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지내왔다.     

☞동생과 남아 있는데 ‘홀로’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거기다가 우리말은 입음꼴로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남겨져 있다’는 영어식 표현이고 이런 번역투에 물든 어른들의 잘못된 언어 습관입니다. 

    

▲어느 날엔가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던 날 나는 한 가닥의 소망을 가지고 떠나시는 엄마를 붙잡고 싶었다.     

☞2학년 어린이의 말투가 아니지요?

그리고 한 가닥의 소망을 가진 주체가 어머니인가요? 아니면 글 쓴 아이일까요? 이 문장 역시 말장난을 하다가 그만 비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는 날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엄마가 오늘은 시장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를 붙잡고 싶었다......”이런 정도로 아이들이 쓰지 않을까요?   

  

▲그날 아침에 난 밥을 먹지 않고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학교에서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아휴~ 머리 아파!!"

그날 저녁에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새벽시장에 나가시는 것이 속이 상해서 아침밥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다가 저녁에도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린이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예사입니다. 이렇게 한 가지 일로 저녁까지 마음상해 있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무슨 잘못을 해서 어머니한테 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게 가슴 아파서 절절매고 있는데 아이는 눈물도 채 마르기 전에 “엄마, 나 나가 놀아도 돼?”하고 물어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저런 저 녀석은 속도 없나…?’하는 생각을 하신 적 많으시지요? 아이들은 그게 정상입니다. 아이들은 슬프고 우울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기쁘고 즐거운 일을 많이, 그리고 오래 기억한답니다.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주루루 내 눈에도 눈물이 줄줄 그렇게도 밉게 느껴지던 새벽 시장 길, 오늘의 엄마의 새벽 시장 길은 우리의 꿈과 소망이 느껴지는 새벽 시장 길이다.

"우리 엄마 파이팅!"    

 

☞어머니에게 파스를 붙여 주고 나니 눈물이 줄줄 났고 새벽시장이 소망이 느껴지는 길이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구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서 이말 또한 진심으로 다가오기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글은 부자연스럽게 꾸며서 만든 거짓글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 버릇을 고쳐주려고 애쓰지요? 그런데 이렇게 거짓글을 써서 상이라도 타오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아할 일이 아니랍니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의 심리는 대부분 임시변통, 위기 모면 따위에 그 뿌리가 있다면 거짓글을 쓰는 심리는 ‘열등의식의 소산’입니다. 내가 한 일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지 못하고 근사하게 꾸며내려고 하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그것에 맞추려고 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이 열등의식과 그 뿌리가 닿아 있습니다. 거짓말의 폐해보다 거짓글이 아이들에게 주는 폐해는 더욱 큰 것입니다.     

  2학년 어린이가 이렇게 이미 병들기 시작한 글을 쓴다는 것이 딱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이런 글을 쓰는 아이가 있다면 옳고 바르고 당당한 정신으로 솔직한 글을 쓰도록 지도를 해야 할 어른들이 이런 글쓰기를 백일장이니 뭐니 하면서 조장하고 상을 주고 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무슨 백일장이나 현상 공모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도 이런 글에 현혹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지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권장하는 어린이 신문이나 간행물 같은 것이 아직도 많아서 걱정스럽습니다. 

  삶에서 떠난 빈말로 쓰는 글이 되지 않도록. 참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을 쓰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새벽일을 나가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다른 아이 글을 하나 들어 보이겠습니다.     


어머니

     한경화(3학년)

우리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서 밥도 안 먹고

장화를 신고 바다에 간다.

옷을 적새 가면서 미역도 쫏고

자갈도 쫏는다.

손이 퉁퉁 뿔어 가면서도

자갈을 쫏는다.

바다야, 우리 엄마

옷 젖게 하지 마라.     

(적새 가면서--적셔 가면서,    쫏고--쪼고)     



  특별히 근사하게 보이려고 했거나 말을 꾸며내지 않았지만 이 글에서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간절한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이 되어옵니다.

삶이 있는 글이란, 진실을 말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또 거기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머리카락             

   ○○○( 5학년)                      

  일요일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아침에 늦잠을 잔 터이라 정신이 매우 어리버리하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장식장에서 사진첩을 꺼내어 정리하고 계셨다. 나는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세수를 하고 나와서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어서 어머니 옆으로 달려가서 사진들을 모아서 사진첩에 끼웠다. 저기 저 구석에 있는 사진은 지난여름에 가족들과 해수욕장에 가서 찍은 사진, 저기에 끼워져 있는 사진은 유치원 졸업식 때,  저기에 껴져있는 사진은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사진…. 

  옛 사진들을 보니 사진 속에 담겨져 있는 추억들이 다시 머릿속에 들어왔다. 

 계속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엎어져 있는 큰 사진 한 장을 내가 발견하였다. 나는 이 사진이 누구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일까? 하며 뒤집어져 있는 사진을 살며시 내 눈을 향해 놓았다. 아니 이것은 어머니의 처녀 시절의 사진이었다.

어머니의 처녀 때 사진은 머리도 길고 매우 예뻤다. 근데 지금의 엄마는 머리도 짧고 주름살도 많다. 나는 엄마가 나 때문에, 나를 기르느라고 머리를 잘랐다고 생각하니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께 눈물을 보이기가 싫어서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는 내가 운 것을 아셨는지 나를 안방으로 불러들여서 “

  “남희야, 슬퍼하지 마. 엄마는 엄마로서의 도리를 다 한 거니까. 이건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의 도리고, 여자가 얘를 나으면 그 아이를 사랑하지? 그건 것 같    이 아이를 기를 때는 내 자신의 미모보다는 내 자식의 편안함과 사랑을 생각해    야 하는 것이야.”

“그래도 나는 아직 내가 애를 낳지 않아서는 모르지만….”

엄마는 내 말을 끊으시고 내 말의 끝을 계속 이으셨다.

 “ 그래, 남희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중에 크면 이런 일은 여자로써 누구나 모두    겪어야 할 관문이야.”

  나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이 나서 어머니 앞에 서있기가 민망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나중에 내가 내 자식에게도 베풀 것이라고 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 2002년 학급문집 중에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어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았는데 그 사진 속에는 머리도 길고 예쁜 처녀시절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기르느라고 머리도 짧고 주름살이 많아진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그것을 보고 이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그렇게 눈물 흘리는 것을 어머니께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았고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는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의 도리를 다 하느라 그런 거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식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미모 보다는 자식의 편안함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5학년짜리 아이가 하는 말이 “그래도 나는 아직 내가 애를 낳지 않아서는 모르지만…”이렇게 답을 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게 실제로 5학년 딸아이와 어머니가 주고받은 말이라고 생각되시나요? 실제로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하더라고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의 도리…’운운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대로 쓴다는 것은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려고 이렇게 ‘없는’ 일을 ‘있는’ 일로 적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글을 보면 아이들에게 진정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꾸며 쓰는 것을 상상력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다릅니다. 아이들이 ‘내가 교장선생님이 된다면…’ ‘내가 수퍼맨이 된다면…’하는 상상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자기가 실제로 상상하고 생각해 본 것을 적어야 하는 것이지 글을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꾸며 쓰는 일은 거짓글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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