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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May 21. 2020

표준 어법과 아이들 어법

글 쓰는 힘 기르기 ②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글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관점이 달라서 되도록 빨리 아이들을 어른들도 깜짝 놀랄 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아이들 글에는 아이다운 목소리가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일입니다. 책 읽기가 문자를 수용하는 소극인 부분이 있다면 글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가 주체가 되어서 이루어지는 아주 적극의 행위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어법이 있고 아이들 나름의 표현 방식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의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차츰 배우고 익히면 되는 일이고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라면 우선 마음껏 쓰게 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보기글 1)

재미있는 피서

                                  김 도 경(2학년)

  나는 어머니와 지하철을 타고 남산 식물원으로 향했다. 갈 때 지하철이 너무 느려서 답답하게 느껴졌다.

우리 아빠 차를 타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가 시청역에서 내린 다음에 택시를 타고 남산 식물원에 도착했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독수리와 원숭이를 봤다

거기서 식물을 봤는데, 식물이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전철역에서 나는 팥빙수를 먹고 어머니는 김밥을 잡수셨다.

나도 다음에는 정상까지 올라가야겠다.      


보기글 2)

책상의 낙서 / 빈진솔(2학년)     

  오늘은 급식이 나왔다. 그런데 지호 책상 옆에 누가 “강주현 똥꼬”라고 적어 있었더니 아이들이 지호 자리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똥꼬”라고 발음이 나는데 지호는 “똥꼬”라고 발음이 됐다. 지호는 무조건 자기 거가 깨끗하지 못하거나 자기 거가 낙서가 돼있으면 싫어한다. 밥도 잘 안 먹는다. 나는 지호를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시험 점수 높고 밥도 잘 먹고 우리처럼 전부 다 똑같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호야 친구들이 많이 도와 줄테니까 너도 노력해! (2003.8.)    

 

 보기글 1)은 표준 어법에 가깝도록 글을 쓰고 있고, 보기글 2)는 표준 어법으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은 글입니다. 그래도 글 속에서 아이가 보이고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은 보기글 2)입니다. 

  보기글 1)은 자기가 한 일만 주욱 나열하고 있는 것에 그쳐 있습니다. 자기 마음이 가 있는 곳이 없어요.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봤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니 좋았다 하는 식이지 정말 내가 마음이 끌리는 ‘그것’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보기글 2)에서는 글의 통일성을 볼 때 첫 문장은 없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저학년 어린이들이 흔히 이렇게 글을 씁니다. 첫 문장과 다음 문장의 연결이 조금 혼란스러워 잠깐 독자는 주춤하게 되지만, 이내 지호(조금 부족한 아이입니다)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이 아이의 마음이 전달되어 오면서 오히려 이 글은 읽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지호를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시험 점수 높고 밥도 잘 먹고 우리처럼 전부 다 똑같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아이의 독특한 문체가 아이의 그런 마음을 더 잘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또렷한 문장 쓰기, 우리가 잘 가르쳐야 할 부분이지만 그것 때문에 아이다움이 살아있는 글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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