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오는 날이다. 오늘은 철인 28호 뽑기를 했다. 라인 공룡 로봇이 나왔다. 어제 마스크맨 빌려 와서 어젯밤에 늦게 오라고 전화했다. 왜냐하면 내일 마스크맨 보고 싶어서 그랬다.(김선우)
이 글도 처음 읽는 사람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읽는 사람을 가장 헷갈리게 하는 부분은 ‘내일’이라는 말입니다.
이 아이는 이모 집에 놀러 가서 한 이틀 묵었습니다. 어제는 마스크맨이라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왔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일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엄마, 나 데리러 내일 늦게 오세요. 마스크맨 봐야 하거든요.” 하고 전화를 했어요. 오늘은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는 날입니다. 엄마를 기다리면서 철인 28호 뽑기도 하고 이 글도 썼습니다. 그렇다면 밑줄 친 내일은 글 쓰는 시점에서는 ‘오늘’이 되는 것이지요. 이 말을 헷갈려 버린 것이지요.
아이들은 과거 시점의 일을 쓰면서도 다음날의 일을 말할 때는 ‘내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이런 특징을 이해하고, 시간을 나타내는 말을 정확하게 알려 주면 좋겠지요.
‘글은 솔직하게 써야 한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1학년 어린이 중에서는 솔직하게 쓴다고 썼는데 나도 모르게 거짓을 써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겪은 일과 책에서 읽은 일, 또는 상상 속의 일들이 막 뒤섞여 버려서 그런 일이 나타납니다.
죽은 새
박예나 (여)
나는 오늘 아침에 죽은 새를 보았다. 강미와 배중석이 우리 집에 오자 죽은 새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옷을 입고 나가 보았다. 정말 죽은 새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죽은 새가 5동에 많이 있는 거예요. 몇 마리 죽어 있는 줄 모르지만 가시덤불 풀숲에 있었어요. 누가 총으로 쐈어요. 피가 나고 있었어요. 나는 집에서 휴지를 가져다 깨끗이 닦아줬어요. 나는 그 근처에 흙을 파서 까치를 묻어 줬어요.
이 어린이가 본 죽은 새는 한 마리였고 5동 앞에는 가시덤불 풀숲이 없답니다. 그리고 ‘총에 맞아’ 죽은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죽은 새를 보다가 며칠 전에 읽은 동화 내용이 떠올랐고 그래서 이 어린이는 그것을 사실처럼 써 놓고 있습니다.
유관순 TV
윤상원(남)
전에 삼일절 TV를 보았다. 개막식을 열고 노래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림이 천장에서 유관순 할머니라도 너무 늙은 할머니 그림이 내려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눈이 커지면서 눈알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열일곱에 죽은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할머니 모습으로 내보낼 리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이는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제 친구들하고 ‘유관순 누나가 아니라 할머니다 할머니.’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글을 쓰면서 친구들과 한 말과 자기 나름의 상상이 떠올라 그 속으로 글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현실과 상상을 계속 넘나들면서 글을 쓰는 아이에게는 ‘진짜로 있었던 일을 쓰면 더 좋다.’는 식으로 말해주어도 좋습니다. 늦어도 2학년 무렵이면 이렇게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은 거의 없어집니다.
일학년 어린이는 글을 쓸 때 우선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씁니다. 그러다 보니 글 쓴 자신도 아쉽다고 생각하는지 무슨 말을 써 놓고 ‘왜냐하면’, ‘그게 뭐냐 하면 ‘하는 식으로 자꾸 설명을 덧붙여 씁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시킨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까닭을 말해 봐라.’ 하는 주문을 많이 받은 아이들일수록 이런 표현을 즐겨 씁니다.
줄 긋기/조수민 (남,)
나는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다. 왜냐하면 줄 긋기를 잘해서다. 내 친구는 내가 칭찬을 받았다고 섭섭해했다. (4.26)
책/남상은(여,)
오늘은 송윤미랑 같이 갔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 신문을 했다. 그런데 책을 안 하고 그림 그리는 것부터 했다. 그리고 책을 줬다. 무슨 책을 줬냐면 2학년 책을 줬다.(12.18)
다친 거/채희명
오늘은 다쳤다. 그거 어디에다가 부닥쳤냐면 벽에 다쳤다, 나는 피가 많이 흘렀다. (9.30)
이런 모습은 글쓰기를 처음 시작해서 보다는 한두 달쯤 흐른 뒤에부터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적당한 시기에 ‘왜냐하면’이 없어도 글이 된다는 것을 가볍게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① 문장이 끝나면 온점을 찍는다.
② 입말로 써도 좋은 글이다.
③ 우리글은 띄어쓰기를 한다.
④ 누구에게나 남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다 있다.
⑤ 알맞은 갈래: 서사문, 시, 일기
아이들이 써 온 글을 읽으면 먼저 칭찬할 준비를 하고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디를 고쳐야 할까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는지요? 일단 칭찬을 받고 나면 그다음 약간의 잔소리를 들어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이 사람 심리지요. 아주 작은 발전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아낌없이 칭찬해 주세요.
1학년 아이들의 글을 지도할 때는 되도록 지도하는 사람의 입김이 많이 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아이가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는 마당만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지요. 다만 조금 도와줄 일이 있다면 넌지시 이야기를 해서 운을 떼는 정도로 그쳐도 괜찮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제약을 받게 되면 글을 편히 쓰기가 어렵습니다. 1학년 아이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 글에서 무엇인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버릇이 보인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보다는 그렇게 해도 좋지만 안 해도 좋다는 식으로 말해주어서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 가령 ‘그리고’라는 말을 아주 많이 써서 그것을 조금 줄이도록 가르쳐 주려면 "쓸데없이 ‘그리고’를 쓰지 마라.” 하는 것보다는 ” ‘그리고’는 써도 좋지만 안 써도 괜찮아."하고 말을 해주어서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자는 것이지요.
또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부분 아이들이 스스로 깨치기도 하고 다른 글을 읽으면서 깨치기도 한답니다. 넉넉하게 기다려주고 감동해 주면서 즐겁게 글쓰기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