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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Sep 10. 2022

공자님도 그건 어려우셨다네

               

  십여 년 전, 아들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아이 학교에서 호출이 왔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아이가 무엇인가를 잘했다고 해서 학교에서 학부모를 보자는 일은 거의 없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때,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호출장이 날아온다. 나름 모범생으로 부모님 속썩이는 일 없이 학교를 다녔던 나는 내 아이가 무언인가를 잘못해서 불려가는 자리가 무엇보다도 마음 상했다. 


  아들이 저지른 일은 이랬다. 아들 친구 녀석(몽룡이라고 하자)과 학급의 여학생 하나(춘향이라 하자), 이렇게 셋이 우연히 교실에 남게 되었다. 몽룡이와 춘향이는 서로 사귀는 사이였다. 이 둘을 보면서 아들이 물었다.

  “야, 너 쟤랑 뽀뽀해 봤어?”

  “아직 못 했어 임마.”

  그러자 아들 아이는 장난기와 호기심이 발동해서 “해 봠마.” 하면서 몽룡이의 등을 슬쩍 밀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고나 할까. 몽룡이는 춘향이 입술에 살짝 뽀뽀를 했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 일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워진’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춘향이가 다른 곳에 가서 이 일을 자랑삼아 발설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여학생 중에 몽룡이의 전 여자친구가 있었다. 이 여학생은 무슨 심리에서인지 자기의 전 남자 친구가 다른 애하고 뽀뽀를 했다는 것에 화가 나서 자기가 몰고 다니던 한 무리의 아이들과 합세해서 춘향이를 때렸다. 교내 폭력 사건이 되었다. 선생님들이 이 사건을 수사를 하다 보니 그 꼭짓점에 우리 아들이가 있었다. 


나를 부른 학교에서는 다시는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잘 교육시키겠다는 사유서를 쓰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참으로 순진했던 나는 그저 가슴만 두근두근했다. 아이가 이번 일로 어떤 제재를 당하면 어쩌나하는 걱정과 한편으로 이런 바보 같은 녀석이 그래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런 말썽이나 부리고 다녀? 하는 괘씸함이 밀려왔다. 아들 아이의 죄목은 ‘풍기문란 방조죄’였다. 나는 아이를 잘 가르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사유서를 작성해서 냈다.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임마, 친구가 교실에서 뽀뽀를 한다 해도 니가 말렸어야지. 이놈아.” 하면서 문초했고 종아리에 ‘사랑의 매’를 댔다.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되는 지점에 그 일이 있다. 우리 아들만 놓고 보면 사춘기 때 아이가 호기심으로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야단치고, 훈계하려고 했는지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교내 폭력은 잘못된 일이지만 자기가 폭행에 직접 연루된 것도 아닌데 그런 대접을 받았으니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겠나? 학교에서 집에서나 자기 마음이나 형편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그때 그게 사랑의 매였을까? 아니다. 감정의 몽둥이였을 뿐이다. 그 후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기, 형편 알아주기는 내 평생의 숙제가 되었다.


  어느 날 늦게 집에 도착한 나를 본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 버린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물기 없게 만드느라고 애썼다는 이야기, 음식물 쓰레기통이 꽉 차서 다른 쓰레기통으로 버리느라고 아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계속 꺼내놓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이야기다. “아, 당신 수고 했네.”하고 알아주면 되었을 것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거가 그렇지 뭐. 나는 맨날 해.” 하고 말해버렸다. ‘아기도 아니면서 뭐 당연한 것을 자꾸 알아달라고 하나...?’ 마음 한 구석에서 이렇게 궁시렁거리면서.


  강의를 하다보면 수강생의 반응이 유난히 좋은 날이 있다. 강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궁합이 아주 잘 맞는 날이다. 강의를 하고 난 기분도 상쾌하고 좋다. 그러면 거기서 끝나면 그만이지 어쩌다가 담당자와 연락이라도 되면 “어떻게 그날 강의는 괜찮아 해주셨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 아이고 내가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남편이 목사인 친구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휠체어에 탄 채로 집에만 있고 직접적인 목회활동을 못하는 상태다. 나는 그 친구랑 점심을 먹다가 목사님 생각이 나서 갈비탕 2인분을 포장해서 주었다. 남편 드시게 하라고. 그러면 거기서 그치면 되지 그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나서 또 묻는다. “목사님 좋아하셨어?” 이 졸렬함의 끝은 어디일까? 다른 사람을 알아주는 데는 그렇게 인색을 떨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요래 바라고 있다. 


  공자님은 인생의 삼락을 이렇게 말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공부의 즐거움을 말한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자면 자기 콘텐츠를 가져라 하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 두 번째로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達方來 不亦樂乎), 먼 곳에서부터 친구가 찾아오니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벗과 사귀는 일의 즐거움을 말한다. 마음 맞는(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날로 더 높아간다. 세 번째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하지 않으면 얼마나 군자다운가 라는 뜻으로 겸손의 미덕을 말하고 있다.


  늘그막 공자에게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은 이 세 가지가 다 편안해지셨습니까? 하고. 공자가 답했다. “나도 어려운 것이 있다. 지금도 어렵다. 그 건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남이 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지금도 나는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걸.” 공자님도 그러셨다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人不知) 성 내지 않는, 열 받지 않는(不慍)일은 공자님도 어려운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내려놓아야만 내 마음이 행복해진다.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시시콜콜 알아주기를 기대한다면 얼마나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이 많을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다른 사람은 내가 알아주고, 나도 내가 알아주고 그러면서 살면 되겠지 뭐.                    


                           이가령(박사, 우리글진흥원 교육원장. 010-2268-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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