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은 따로 있다.
단풍잎이 있지요? 단풍잎의 손가락(?)이 몇 개일까요? 다섯 개! 틀리는 대답은 아니지만 맞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단풍잎을 실제로 보면서 손가락을 세어보고 한 대답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그럴 것이다.’하고 생각해서 한 대답이지요. 그런 것을 ‘관념’이라고 합니다. 관념으로 글을 쓰면 누구나 하는 표현이 거의 비슷해요. ‘매미는 맴맴’ 울고 가을들판은 ‘황금물결’….
하지만 무엇인가를 실제로 보고 듣고 만져보고 느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은 따로 있어요.
마늘 껍질을 까 보면 그 느낌이 어떨까요? 냄새난다, 맵다, 까기 어렵다, 끈적거린다…. 1학년 아이들하고 ‘마늘 까기’ 수업을 해봤습니다.’ 마늘 껍질을 벗겨 보는 것이지요. 아직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이니 마늘 껍질을 벗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마늘 껍질을 열심히 벗기던 한 아이가 자기가 깐 마늘을 들고 오더니 “선생님, 마늘이 내복을 입었어요.” 하는 것이었어요. 마늘의 겉껍질 속에 숨어 있는 얇은 막 같은 속껍질을 ‘내복’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 순간 “햐, 참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마늘 껍질을 벗겨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실제로 체험해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표현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이 향상된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혹시 ‘피시 롱 한 맛’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고요. 그렇다면 ‘피시 롱 한 맛’이라는 말에서 머릿속에 어떤 느낌이나 상(相)이 떠오르나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머릿속이 진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신맛은 어떤가요?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확 고여 오는 듯합니다.
어떤 아이가 책에서 ‘떫은 감을 씹은 표정이었다.’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글자를 읽을 줄 아니 ‘떫다’라는 어휘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말밭에 어휘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떫은맛을 본 적이 없는 아이라면 앞서 우리가 ‘피시 롱 한 맛’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머릿속이 진공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떫+다’라는 음운을 읽었지만 그것이 주는 이미지나 상 같은 것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것을 진정한 자기 어휘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독서를 통한 어휘력 확장도 결국은 생활 경험의 확충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자기 어휘가 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만’ 읽지 말고 잘 놀고 이것저것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일도 많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피시 롱’이란 말은 없어요. 제가 마음대로 만든 단어랍니다.)
한 번은 아주 떫은 감이 있었어요. 한입 베어 물어보니 입안에 백태가 끼는 게 아주 고약했습니다. 그래서 그 감을 예쁘게 깎아서 아이들에게 시침 뚝 따고 먹어 보게 했습니다. 선뜻 받아먹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웩웩거리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아이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 선생님이 우리를 속이고 떫은 감을 주셨다. 떫은 감은 맛이 아주 이상했다. 조금 있으니 떫은 감이 내 입속에 보이지 않는 텐트를 친 것 같았다.
백형원(1학년)
떫은맛은 입안이 좀 응축되는 느낌이 들게 하잖아요? 잘 삼켜지지도 않고 뱉는 것도 마음대로 잘 안되니 떫은 감은 ‘입안에 보이지 않는 텐트’를 친 것 같다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절대로 관념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