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영어 공부를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해봐야지 결심하고 열심히 1년을 하고 난 후였다.
TED에서 우연히 "How to learn any language in six months (6개월 만에 언어를 배우는 방법)"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한창 고무되어 외국어 듣기와 말하기 관련 영상을 엄청나게 많이 찾아보고 이 분야 유명한 유튜버들을 모두 찾아 구독하고, 월요일마다 동기부여와 리스닝 훈련을 위해 반복해서 그들의 영상을 들었다. 듣기와 말하기에 대한 수십 개의 영상을 반복해서 듣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아직 유튜버도 많지 않았고 특히나 듣기와 말하기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영어 영상을 주로 봤었다.
외국어 듣기와 말하기 방법은 따로 있다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나 토익 시험을 위해 문법과 독해 위주로 공부하는 방법과 실전 대화, 특히 말하기 훈련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런 영상들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독한 마음을 먹고 영어 패턴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고 전화 영어 회화를 1년 정도 했는데도, 영어 회화가 더듬거리는 수준으로 밖에 되지 않아 좌절하고 있었다.
외국어 학습의 영상들은 열 가지 팁, 5가지 단계 등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지침을 주기도 하고, 우리의 뇌가 듣기와 말하기를 하는 원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 또는 왜 그렇게 되는지 충분할 설명이 부족해서 항상 아쉬웠다. 전문 용어를 쓰는 경우는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정리를 잘하여 알기 쉽게 설명했기 때문에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몇 가지 팁들은 그대로 해보면서 점차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때 영상을 보면서 메모했던 수많은 것 중에 딱 하나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고 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리고 긴장을 푸세요
그러던 중, TED 영상 중 하나인 "5 techniques to speak any language (어떤 언어로든 말하는 5가지 테크닉)"를 보았다. 발표자 "Sid Efromovich"는 7개 국어를 할 수 있었고, 5가지 테크닉을 순서대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첫 번째 테크닉에 대한 설명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첫 번째 기법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표자는 아주 긴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긴장을 푸세요.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을 틀리는 것입니다. 실수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원칙입니다.(중략) 만일 우리가, 데이터베이스를 벗어나 실수를 용납한다면, 우리는 "(전동음 ㄹㄹ, - 스페인의 'r' 발음으로 혀가 입천장을 치며 떠는 듯한 발음으로 영어 'r'발음과 다르다.)"과 같이 발음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대신 우리는 우리의 데이터베이스 상에 있는 제일 가까운 소리를 찾아, "ah-er"와 같이 발음하곤 합니다. 첫 번째 기법으로, 여러분 자신에게 실수를 허용한다면, "Puerta"(스페인어로 '문'이란 뜻)와 같은 소리가 절로 나올 것입니다."
첫 번째 테크닉은 실수를 하는 것, 사실 설명이 잘 된 편은 아니었다. 정리하면 처음 우리가 새롭게 외국어를 배울 때 새로운 발음이나 구조를 그대로 흡수하여 사용하지 않고, 모국어나 다른 언어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가장 비슷한' 발음을 사용하게 된다. (이를 인지 언어학에서는 '언어전이'라고 한다.) 그러면, 새롭게 배우는 언어가 배우는 데 필요한 기폭제(새로운 언어의 데이터베이스)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지 못하니 실수를 통해서 영역을 넓혀가라는 것이었다. 실수를 통해 안 하던 발음과구조로 영역을 넓히라는 뜻이다. 7개 국어에 능숙한 발표자가 머릿속에 7개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비결 같아서 계속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맹인 상태에서 중국어를 익히다
"5 techniques to speak any language"의 첫 번째 기법에 대한 이해는 그로부터 몇 년 후, 두 번째 외국어인 중국어를 하게 되면서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중국어를 배우면서 간체자 한자를 외우는데 질리기도 하고, 그동안 소리 듣기가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중국어는 문자를 보지 않고 소리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중국어 글자를 못 읽는 문맹인 상태로 책 없이음성 파일과 유튜브 영상의 소리만 들으면서 듣고 따라 하기만 했다. 중국어 문장 한 번, 한국어로 뜻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단어의 뜻도 모른 체 문장 전체의 의미만 듣고 따라 하기만 하였다. 출퇴근하면서 계속 2주 정도 하니 어렵다는 권설음도 꽤 비슷하게 흉내 내고, 처음에는 비슷하게 느껴지던 'shi", "xi", "si"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3달 정도 되니 문장을 통째로 외워서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단어들을 사전에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어들을 조합해서 문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스마트폰에 간체자 입력할 줄 몰라서 사전이나 파파고에도 소리로 말을 해서 입력했다. 그러고 나서, 교재를 보면서 글자의 모양을 익혀나갔다. 처음부터 책을 봤다면 더 많은 어휘와 글자를 익힐 수 있었겠지만 그 후에 다시 발음을 교정하고 말하기를 따로 연습해야 했었을 것이다. 한국말처럼 발음하게 되는 언어전이도 따로 극복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국어와 같거나 가까운 영역을 이용해야 한다
"5 techniques to speak any language"에서 말한 것처럼 실수를 거듭하면서 중국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나서 중국어로 대화를 하게 되니 말하고자 하는 바를 떠올리면 소리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중국어를 듣고 말할 때와 모국어인 한국어를 말할 때 사용하는 머릿속 영역의 위치가 같다는 게 느껴졌다. 뇌 사진을 찍거나 fMRI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 같은 두뇌 이미징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서 한국어를 다른 외국어로 번역을 하거나 문법을 생각해서 분석할 때와 다른 영역이 확실했다. 듣거나 생각하면 모국어인 한국어처럼 이미지가 그려지고 느낌이 떠올랐다. 긴장을 풀고 듣고 말해야 그 부분이 활성화된다. 머릿속에서 번역하고 문법이 끼어들면 다른 부분이 활성화된다. 머릿속 번역과 분석을 이용하면 안타깝게 공부했던 내용을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서 지워진다. 학창 시절 뇌과부하 걸려서 외웠던 암기 과목 내용이 시험이 끝나면 얼마 안 가서 기억 안 나는 것처럼. 그래서, 외국어를 오래 쉬었다가 다시 하려고 하면 다시 초보부터 시작하게 된다. 반면, "5 techniques to speak any language"에서 말한 데이터베이스는 훨씬 기억이 오래간다.
성인이 언어를 학습할 때도 어린이와 같은 영역을 이용해야 한다
언어를 배울 때의 뇌 활동의 차이점을 다룬 책이나 논문을 보면, 성인으로서 언어를 학습할 때 어린이와 뇌의 활동이 같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중언어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아르투로 E. 에르난데스는 성인이 언어를 배울 때 그들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였다. 그는『언어의 뇌과학』에서 성인이 몰입 학습 방식을 사용하여 언어를 배울 때, 그들의 뇌의 언어 처리 영역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뇌는 여러 언어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뇌 속에서의 언어 처리 영역은 사용 빈도와 학습 방법 요인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긴장을 풀고 자주 듣고 말하고 몰입 학습을 하면 어린이와 같은 영역의 뇌 활동을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어릴 때 뇌가 말랑말랑하여 신경적 플라스티시티(Neuroplasticity)가 높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