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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Sep 16. 2024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 주인의 묘안이 놀랍다

작은 동물원으로 변신... 동네마저 깨끗하게 만든 친환경 아이디어


▲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하는 자투리땅을 동물원을 만들어 동네환경을 개선하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집 앞에 틈새만 있으면 여지없이 쓰레기가 쌓인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한다. 벽에는 광고스티커도 덕지덕지 붙어있다. 도로와 골목을 끼고 있는 건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택과 건물이 온통 생활 쓰레기로 포위된 상황이다. 이를 보다 못한 이웃집은 자기 집 앞에 구청에서 얻은 '쓰레기금지경고판'을 따로 설치했다고 했다.



내가 사는 동네, 매일 쓰레기 투기로 몸살을 앓는 동네의 익숙한 풍경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도 헷갈리는 상황이다. 구청은 각종 쓰레기를 분류해 자기 집 문 앞에 내놓으라지만, 쓰레기 환경 요원들은 이와 달리 집이 아닌 도로 한 곳에 갖다 놓으면 치우기 편하다고 말한다.



            

▲  동네에 CCTV가 설치 안된 곳이 없다.



▲  CCTV 작동중 경고문



동네 가는 곳마다 구청 명의의 쓰레기 투기 금지 안내문이 곳곳에 거의 있어 외지인들이 여길 어떻게 생각할까 창피할 정도다.



이것도 모자라 CCTV도 곳곳에 설치, 없는 곳이 없어 그야말로 감시통제사회가 떠오르기도 한다. 살아보니 사람들이 모두 쓰레기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일부러 거쳐가기도 하는 곳... 이런 방법도 있구나



            

▲  건물 앞 자투리공간을 닭과 공작을 키우는 동물공간으로 바꾸니 쓰레기투기가 사라졌다.



이런 쓰레기 투기대란 가운데 눈길 끄는 곳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서울 남부순환도로 관악보훈회관 인근 독산동 한 빌라 앞 자투리땅을 활용한 가칭 조류동물원이 그것이다.



한 눈에 다 보이는 이 자투리땅 역시 예전에는 쓰레기투기공간이었다. 울타리 안에는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당신 모습을 CCTV가 보고 있다'는 구청 안내문이 지금도 붙어있다.



높이 2미터 5미터 둘레 3평 정도에 큰 나무가 있고 울타리 펜스가 둘러져 있다. 그 속에는 수탉과 암탉 그리고 공작이 살고 있다. 누군가 들어가 모이와 물을 줄 수 있도록, 조그만 출입문도 달려있다.



울타리 한편엔 앵무새 새장도 있어 총 다섯 마리 조류들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매일 이곳을 구경하거나 새소리를 들으면서 웃음 지을 것이 틀림없다.



펜스 안은 조류들이 서식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걸 갖추고 있다. 모이통과 물통, 쉼터, 횃대 역할을 하는 조그만 바위 등, 바닥에는 부드러운 흙까지 깔아 두었다. 여기 조그만 공간에서 동물들은 보살핌 속에 각자의 삶을 누리고 있다.



            

▲  동물원 우리에 있는 숫닭, 암닭과 공작새도 함께 산다.

            

▲  동물원 옆에는 햄스터 케이지도 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시간이 나 울타리 안을 좀 더 살피기로 했다. 수탉은 모이를 실컷 먹고 물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수탉은 간간히 체구가 작은 암탉을 쫓아가 괴롭히는데 암탉이 도망가면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아침이라 그런지 조류들은 저마다 털을 고르며 날갯짓으로 분주했다. 암컷인 공작이 흙먼지를 내더라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흙목욕을 한 자리는 움푹 파졌다. 암탉이 그곳에 들어가 흙목욕을 준비하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울타리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뒤에는 설치류 햄스터 우리도 보였다. 또한 감나무 뒤에는 몇 그루 대나무를 심어놨다. 이곳은 참새들의 놀이터. 10여 마리의 참새들이 30분 동안 계속 지저귀었다. 동물원 지붕에 가끔 내려앉는 참새를 휴대전화로 촬영을 시도했는데 얼마나 빠른지 초점을 맞출 수 없어 포기했다.



동물원이 동네를 쓰레기 없는 곳으로 만들어



그런데 이 울타리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기존의 나무를 중심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조류를 풀어놓은 친환경 동물원이라는 점이다. 능소화 마디에서 생긴 뿌리가 다른 나무를 지지대 삼은 모양인데, 꽃 피운 능소화는 마치 나무를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나무를 제거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친환경동물원을 조성했다. 모과나무에 능소화를 접목하기도 했다.


            

▲  모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모과열매들



모과나무는 3층 크기로 다 커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땅에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푸른 열매들이 여러 개 보였다. 능소화 꽃도 몇 잎이 바람에 구르고 있었다.



과거 동네 곳곳에 민관이 앞다퉈 나무를 심었는데, 이 곳은 모과나무와 능소화의 '콜라보'랄까. 울창하기도 해 아마 여기처럼 아름다운 나무는 유일할 것 같다.



근처 동네에 살면서 올해 초 이곳을 발견하고는, 오갈 때마다 닭과 공작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멀리 지나다가가, 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 일부러 이곳을 거쳐가기도 한다.



다른 동물을 생각하고 돌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심성마저 착해지는 느낌이다. 여기 사는 주민들은 이 명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리저리 구경하는 나를 보고는 미소를 건넸다.



동물원 덕인지 주변 건물과 도로, 골목이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실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투기하는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보니 '깨진 유리창 이론' 이 떠오르기도 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한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 방치되면, 추가적인 파괴 행위를 유발하고 궁극에는 더 큰 무질서와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좋은 사례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전에도, 쓰레기투기 공간에 화분을 갖다 놓거나 화단을 조성해 투기를 막는 여러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오히려 화분 속이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쌓여만 갔다. 묘안이 필요했다.



동물을 데려다 놓는 것도 그 묘안 중 하나 아닐까.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이 이렇게 동물 사는 환경으로 변모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다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설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이 누군지 그에게 표창이라도 주고 싶다. 깨끗한 환경이 사회적 무질서를 예방할 수 있음을 직접 이렇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 조류 동물원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아마도 이 건물의 설비업자(동물원 옆에 바로 붙어있는 곳이다)이 아닐까 추측이 되는데, 찾아갔을 때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격려와 응원을 해줄 참이다.



나는 이 동물원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 동네 쓰레기문제는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젠 희망을 보았다. 비단 동물원은 아니라 해도, 소규모 식물원이나 화단 등, 자투리 땅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해보면 어떨까. 앞의 좋은 사례처럼, 이를 계기로 주민들의 의식 또한 점차 개선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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