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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영감으로 가득 찬 꿈결의 영화

<지구 최후의 밤>

0. 

이 영화는, 아마 당신이 극장에서 보게 되지 못 할 수도 있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과 시간을 당신의 스케줄과 맞추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 티브이에서는 방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러닝타임이 길고(2시간 38분), 영화에 흠뻑 빠지지 못 하면 미치도록 지루할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아 보려 해도, 아마 다른 재미있는 영화에 그 순위가 밀릴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이 영화를 평생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더욱 그래서 이 영화를 당신에게 추천하고자 한다. 오늘의 이 글은 스포일러 따위가 아니다. 함께 꾸는 꿈이길 바란다. 오늘은 당신과 함께 지구 최후의 밤에 꾸는 꿈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1.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나이도, 이름도 확실치 않았던 여자와 애인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갱단의 두목의 애인이기도 했다. 이 여자는 그 갱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작전을 짰다. 그놈으로부터 도망가자.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법. 남자는 갱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남자와 여자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자는 말했다. 저 갱을 총으로 쏴 버려요. 극장에서 총소리가 날 때 그의 뒷자리에서 총을 쏘면 될 거예요. 남자는 총을 가지고 갱단 두목의 뒤에 앉았다. 하지만, 총을 쏘지는 못 했다. 여자는 남자를 떠나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남자의 아버지가 죽고, 고향에 오랜만에 돌아온 남자는 여자를 찾아보려 한다. 희미한 단서를 들고,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2. 

남자의 이름은 뤄홍우(황각), 여자의 이름은 완치원(탕웨이)이다. 완치원은 빛나는 녹색의 실크 드레스를 입고 마을을 떠나려다 뤄홍우에게 붙잡혔다. 완치원의 애인인 갱단의 두목이 뤄홍우의 친구를 죽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갱단의 두목도 사실 남자와 아는 사이다. 시골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그 복잡다단한 관계를 떠나는 방법은 고향을 떠나거나 죽거나 죽이는 것뿐이다. 기차 안에서 뤄홍우는 완치원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고, 완치원은 담배를 피웠다. 기차가 흔들려서 완치원의 립스틱이 번졌다. 완치원은, 그러니까 탕웨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연기를 해낸다. 그것은 그러니까. 


한 남자에게 ‘우연히 만난 사람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 남자가 마음속에 상처가 많아 커다란 눈을 진지하게 깜박거리는 사람이면서, 말수가 적고, ‘사람이 무언가를 먹고 있을 땐 거짓말을 하기 힘들다’ 따위의 말을 믿고 있는 순수한 사람이면 더욱 좋다. 그 여자는 녹색의 실크 드레스에 가녀린 힐을 신고 위태하게 걸으며 고전적이면서 고혹적인 빨간 립스틱과, 동시에 남자의 눈물도 상처도 바보도 다 관조하면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서 도무지 이 세상에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바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배우, 탕웨이의 역할이다. 


3. 

여자는 하나의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완치원은 도둑이었다. 도둑질을 위해 들어갔던 집에서 갑자기 들어온 집주인 때문에 당황하여 가장 귀한 것 하나만 가지고 나가자는 동료(?) 도둑의 제안에 가지고 나온 책이다. 세상에 이런 도둑이 있을까. 여자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다. 녹색의 양장본 얇은 연애 소설. 지구 위에는 없는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주문을 외우면, 주위가 회전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논리학 시험인가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혹은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말하면, 주위가 회전한다는 것인데, 대우 명제를 보면 한 번도 주위가 회전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니. 그런 사랑은 아직 지구에 없었나 보다. 남자는 여자의 이마에 키스를 해 본다. 아마 주문을 외우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주위는 여전히 어둡고 고요하고, 하지(夏至)에 나타난 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을 뿐이다. 


4.

남자와 여자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닮았다. 그들은 모두 필터를 끊어 내고 피운다. 더 독한 담배를 피우겠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의 행위다. 나이 든 꼰대들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아무튼 두 사람은 필터를 끊어 피운다. 하지만 어딘지 불안하다. 담배 같은 것은 피우지도 말고, 어디 지방직 공무원 시험 봐서 둘이 그냥 편안하게 살면 안 될까. 바보 같은 소리다. 여자는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고서는 담배를 꺼내 문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담배를 빼앗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문다. 괜찮다고 이미 아이는 지워버렸노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남자아이였으면 운동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남자는 말한다. 탁구라면 내가 좀 하지. 남자와 여자의 아이는 탁구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밀회의 방에 여자의 남자 친구인 갱단의 두목이 오고 있다. 기차역 근처의 집. 갱단의 두목은 마지막 기차로 온다고 했었는데, 아까 보낸 기차가 마지막 기차가 아니었나 보다. 한 대의 기차가 더 오고 있다. 테이블 위의 유리컵이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에 맞춰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고 흔들리다 결국 테이블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5.

유리잔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으면, 결국 떨어져 깨지는 시절이 있었다. 유리잔은 깨지는 순간 그것이 유지하고 있었던 어떤 긴장이 순간 허공으로 흩어지고 만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카페에서 친구들이 말한다. “그 친구 걔랑 깨졌다며?” 깨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린 화면으로 떨어지는 유리잔을 생각했었다. 관계가 있으면, 그것이 결국 떨어져 깨지는 시절이 있었다. 

6. 

남자의 엄마는, 남자가 어렸을 때 집을 떠나갔다. 마을에 양봉업자가 들어왔는데, 남자의 엄마는 꿀을 훔쳐왔었다고 했다. 남자는 엄마가 훔쳐 온 꿀을 맛있게 먹었다. 남자의 엄마는 곧 양봉업자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 남자는 엄마가 가져다준 꿀이 끝내 훔쳐 온 것인 줄로만 알았다. 양봉업자가 마지막 순간에 망설이자 남자의 엄마는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고 한다. 남자의 엄마는 가난했다. 남자의 엄마는 슬픔이 극에 달하면 사과를 가운데까지 다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남자는 엄마가 떠나간 뒤 슬플 때마다 사과를 씨까지 다 깨물어 먹었다. 아무리 사과를 끝까지 깨물어 먹어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7. 이제 남자는 여자를 찾으러 떠난다. 매음굴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남자는 공연 시작에 앞서 잠시 잠이 든다. 그리고는 깊은 꿈속의 굴로 빠져 든다. 이 남자는, 여자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소년은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8.

남자의 꿈속에서 여자는 당구장에서 일을 한다. 당구장은 비유적인 장소이다. 남자는 여자의 직업을 꿈속에서 지레 오해하고 있다. 미인의 기구한 삶이 있을 수 있다. 남자는 여자를 희롱하는 녀석들을 혼내주고, 여자에게 말을 건다. 

“내가 찾는 사람과 매우 닮았습니다.”

꿈은 솔직하고 이기적이다. 꿈은 사람의 욕망과 기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누군가 내 꿈을 들여다본다면 어떻게 될까. 꿈속이란 으레 그런 것 아니오. 변명할 수 있을까. 반라의 무희들이 공연하는 무대는, 시골 마을의 조촐한 노래자랑 대회로 변주되어 꿈속에 나타난다. 꿈은 자기 부정과 긍정이 뒤엉킨 장소이다. 남자는 여자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인적이 드문 당구장에서 홀로 담배 심부름이나 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전 당신이 찾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

여자는 모든 것이 미스터리다. 말투, 복장, 눈빛, 모든 것이 다른데 그 여자가 확실한 것 같다. 남자는 여자에게 같이 날아보자고 한다. 

“네?”

“이 탁구채를 돌리면 날 수 있어요.”

“떨어지면 어떡해요?”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니. 함께 날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긴 꿈속이니까. 

9.

꿈속에서 누군가 말의 등에 사과를 싣고 있다. 말이 갑자기 몸을 뒤흔들더니 사과가 바닥에 다 떨어졌다. 꿈속에서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 한 여자가 뒷모습으로 다가와 나무에 불을 붙인 뒤 사람들을 위협하다 밖으로 나가려 한다. 남자는 꿈의 바닥에 흩뿌려진 사과를 하나 집어 들고 미친 여자를 따라간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사과를 건네줄 수 있을까. 


10.

영화는, 근래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 남자는 엄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슬픔이 극에 달하면 사과를 끝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시계는 함부로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폭죽도 함부로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일까. 엄마는, 아니 여자는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아니 왜 떠나간 것일까. 말에서 떨어진 사과 하나를 집어 나는 함껏 베어 물고 싶어 졌다. 슬픔이 극에 달하면, 사과를 끝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고 한다. 남자는, 결국 꿈에서 깨지 못할 것이다. 오늘 밤엔 지구 상에는 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 꿈속에선 폭죽도 멈추지 않고 계속 탄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연애 소설과 남자의 꿈의 데칼코마니,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이다. 



*이 글은 얼리어답터(http://www.earlyadopter.co.kr)에 유선생의 방과후영화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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