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치지 않아(Secret Zoo)>(2019)를 강력 추천함.
영화 <해치지 않아(Secret Zoo)>(2019)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해요.
물론 원작의 내용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원작은 탈을 쓴 동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더 주목하여 <해치지 않아>라는 제목이 잘 어우러졌던 작품인데요, 영화는 장르의 특성상 웹툰보다는 더 밀도 있게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해치지 않아>라는 제목이 영화의 이야기와 다소 동떨어진 느낌도 살짝 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로, 영화가 재미없다는 말은 아닙니다요. 웹툰은 웹툰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각의 성격에 맞게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어요. 무엇보다 주연 강태수 변호사 역을 맡은 안재홍. 너무 귀여운 거 아니심? 그동안 독립 영화와 예술영화와 상업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매력을 뿜뿜 뽐내던 안재홍 배우님께서 단독으로 주인공을 꿰차셨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게 다소 무리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괜한 것이었어요. 큰 영화 화면을 혼자 쓰셔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나름 주인공 포스 뽐내며 열연해 주셨어요.
그리고 왠지 안재홍 배우님. 약간 북극곰 닮은 것 같아요.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게 전(前) 동물원장님으로 열연을 보여 주신 박영규 님 보다 훨씬 더 북극곰 같았어요.(그리고 북극곰 엉덩이 어쩔?)
수의사 한소원 역을 연기해 주신 강소라 배우님도 완전 미모 장난 아님. 사자처럼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지만 가만히 보면 강태수 변호사가 하라는 대로 다 따라주는 츤데레가 거의 레전드급?
그리고 초반 동물쇼(?)를 책임지고 있는 고릴라 고롱이 김성오 님, 솔직히 <널 기다리며>(2015)에서 보여 주었던 역이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운 역할이어서 조금 무서운 이미지가 남아 있었는데 이 영화로 완전 무섬미(?) 툴툴 털어 버리고 귀염미 장착! 특히 나무늘보와의 캐미는 환상. 고릴라가 나무늘보 업고 갈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귀여운, 나무늘보 김해경 역을 연기하진 전여빈 님. 너무 예쁘신 거 아닌가요. 진짜 나무늘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만 봐도 힐링. 근데 나무늘보는 진짜 나무늘보 아니었음? 다른 동물들은 탈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나무늘보는 진짜 나무늘보 가져다 놓은 줄?
그 외 카메오 출연하신 한예리 님! 재벌 연기 완전 소름. 근데 저도 한예리 님처럼 한 번쯤은 재벌이 되어서 막 변호사 그런 사람들에게 소리 벗고 팬티 질러보고 싶기도... 응? 그리고 안 나오면 섭섭한 한국영화 카메오계의 레전드 김기천 배우님의 “됩니다” 드립. 다짜고짜 된다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는 이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어요. 키득키득 웃으면서 봤어요. 근데 웃기만 했던 것은 아니에요. 영화가 주는 이야기를 통해 뭔가 찡한 성찰도 할 수도 있었어요. 억지 감동이 아닌, 그냥 마음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영화는 음, 장르적으로 전형적이에요. 한국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코미디 영화 같은 느낌적 느낌?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안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야기를 잘 컨트롤하신 느낌. 저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재미있게 봤는데, 그 영화도 연출하신 분이었어요. 역시 내공 있으신 감독님이시라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 가시는 실력이 장난 아니셨음.
영화 <해치지 않아(Secret Zoo)>(2019) 여러분 모두에게 강추합니다!!!
이번엔 말투와 어조를 다소 바꿔서
그래서 나는 이 재미있고 소박한 영화를 좋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까지 마냥 소박하지는 않다. 감독은 “그냥 웃고 즐기면 되지 뭐 복잡하게 생각하느냐”라고 말하기 위해 대충 얼버무려 숨겨 놓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결하다. 우리는 가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짜의 가짜됨(‘참됨’이라는 명사형이 존재한다면 가짜됨이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을 벗어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할 테지만 우리는 어차피 그 가짜됨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들 인생과 같다. 채플린이 말했다던가. 이 영화는 멀리서 보면 재미난 하나의 코미디이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비극이다.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
거짓말.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가 가짜라니.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보고, 만지고, 출근해서 앉고, 퇴근해서 술 마시고, 다달이 꼬박꼬박 카드값이 어김없이 나가는 이 세계가 가짜라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세계는 가짜다. 탈을 쓰고 진짜인척 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혹은 진짜인 줄로만 알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진짜다. 모두 다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욕하기 쉬운 직업군 중의 하나인 국회의원을 예로 들어보자.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이라는 시뮬라크르를 만들어 내며 존재하는 인간들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국회의원들을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이 헌법과 법률에 정하는 의무(그런데 헌법과 법률은 또 실재하는가.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이 끝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어서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뭐하는 세계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에 시뮬라크르는 버젓이 존재한다.)를 충실히 이행하는, 그리하여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이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플라톤이 와서 너희 나라에는 국회의원이 있냐?라고 물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우리나라엔 국회의원이 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국회의원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많이 섭섭할 것이다. 매일 지역구에서 올라오는 민원과 눈만 뜨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적 이슈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수 백 조가 넘어가는 일 년 예산을 심의, 의결하느라 몸이 열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판에 내가 가짜라니. 억울한 국회의원은 따져 물을 것이다. 그래? 그럼 너희들은 그래서 얼마나 진짜냐. 민주주의를 원한다면서 투표율은 아무리 좋아봐야 육십 퍼센트를 넘지 않고 겉으로는 공명심과 정의감에 불타 광광 소리를 지르지만 결국 제 잇속을 따지는 데에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우리 국회의원들을 욕받이 삼아 욕은 욕대로 하고 실리는 실리대로 챙기려고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론 직접 말하진 않겠지만 아마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 그럼 우리 탈을 벗어보자.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탈을 벗는 거다. 하나! 둘! 세
여기까지 세었을 때 우리는 하나 고민이 퍼뜩 떠오른다. 실은 탈이 하나가 아닌데. 어디까지 벗어야 하는지 정확히 합의를 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타임을 걸고 물어볼까. 어디까지 벗는 것인지. 아니, 그러면 모양이 빠지는데. 가만 보니 저쪽도 망설이고 있다. 우리 그럼 벗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평화가 찾아왔다. 서로 탈을 쓰고 있는 상태로 탈을 쓰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혹은 느끼며 혹은 감각하며 살아가기.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에겐 물론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인 법률과 도덕과 윤리라는 또 하나의 가상현실이 존재하니 가상현실에 가상현실을 덧대 살아가면 어느 정도 그럭저럭 외양을 갖추며 살아갈 수 있다.
탈의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나는 어디까지 나인가. 이거 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분도 사실은 나 모르는 탈 아닌가. 탈 밖에 또 탈이 있는데 탈 안에 또 탈이 있는 것 아닌가.
손재곤 감독의 신작 영화 <해치지 않아(Secret Zoo)>(2019)는 위에서 말한 이 심각한 철학적 질문을 아주 가볍게 던져 보고 있는 작품이다. 돈 때문에 동물원이 망하게 생겼다. 동물원은 동물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의 가상현실인데, 그 가상현실을 뒷받침하고 있는 동물들이 어느 날 다 사라져 버렸다. 돈 때문이다. 한 작은 자본가가 자신의 부(富)라는 가상현실을 위해 동물원이라는 가상현실을 이용하기로 한다. 작은 자본가는 더 돈이 많은 큰 자본가에게 1원이라는 돈을 주고 산 동물원이라는 가상현실을 100억이라는 돈을 받고 되팔기로 한다. 그때까지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이 가짜로 동물원을 운영해 주기만 하면 된다. 큰 자본가는 이미 넘쳐나는 부 대신에 존경이라는 가상현실을 사고자 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신 동물원장이 되고, 구 동물원장은 물러난다. 헌 가상현실은 자리를 비키고 새로운 가상현실이 들어온 것이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이 세계가 바로 이런 세계이다. 가상현실은 아주 공고한 체계 속에 복잡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서는 진짜처럼 행세한다. 작은 자본가의 하수인이 된 주인공은 이 복잡다단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 같은 진짜 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사라져 버린 동물들을 대체할 아주 진짜 같은 가짜를 또 만들기로 한다. 동물원에 동물이 없으니 아주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사람이 그 탈속에 들어가 동물이 되기로 한 것이다. 휴, 힘들다. 뭔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벌써 몇 겹의 가상현실이 겹쳐져 있는 것인가.
영화 속 동물원의 수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될 것 같아요?” 가상현실, 즉 동물 모형을 제작해 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됩니다.” 된다고요? “네, 됩니다.” 세상에, 이렇게 빤한 거짓말이, 이렇게 빤히 보이는 가상현실 따위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요? 아무렴. 우리가 바로 그 세상 속에서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북극곰 탈을 쓴 가짜 북극곰이 콜라를 먹고, 그 콜라를 먹고 있는 북극곰이 유튜브를 타고 전파되자,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다.
이 소극은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가. 이 영화는 몇 겹으로 우리를 둘러싼 가짜들의 세계 속에서 진짜 나, 혹은 참된 나를 찾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지를 넌지시 묻고 있다. 자본이 우리들 세상 속에 풀어놓는 달콤한 거짓말 속에서 우리가 진실로 추구해야 할 것들을 추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럴듯한 동물의 탈을 쓰고선 마치 진자 동물 인양 행세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는 자본의 욕망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동물 탈을 쓰고 묵묵히 오늘의 제 일을 해내는 직장인의 모습에서 쉽게 웃을 수는 없었다. 웃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말할 것 없이 영화 <해치지 않아(Secret Zoo)>(2019)는 좋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쉽게 눈치 채지 못하는 블랙코미디를 슬그머니 해내고 있다.
+모든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의 <해치지 않아> 공식 스틸컷을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