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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Aug 07. 2020

Ep10. 행복으로 가는 길

열번 째 방울

"이제 어디로 가?" "집으루 가지." 벗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구보는 대체 누구와 이 황혼을 지내야 할 것인가 망연하여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 中 

소설가 구보는 걱정이 많은 어머니를 두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선다. 종착이 없는 길을 따라 전차에 오른다. 저 만치 보이는 여인. 일전에 한 차례 만난 적 있는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잠깐이나마 그 여인과의 눈 마주침에서 구보는 그녀가 나를 알아봐주고 어쩌면 나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거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차를 떠났다. 구보는 그가 바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을 함께 떠나갔다고 생각한다. 


구보는 다른 기쁨을 찾아 남대문을 안에서 밖으로 경성역으로 가보기로 한다. 

"구보가 한옆에 끼어 앉을 수도 없게시리 사람들은 그곳에 빽빽하게 모여있어도, 그들의 누구에게서도 인간의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네들은 거의 옆의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일도 없이, 오직 자기네들 사무에 바빴고, 그리고 간혹 말을 건네도, 그것은 자기네가 타고갈 열차의 시각이나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본인의 안위를 생각하기 바쁜 사람들. 티는 안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마음 속으로 우위에 서있는 모습이다. 구보는 이곳에서 벗을 만난다. 벗에게는 애인이있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이 용모도 변변치 않은 벗을 사랑하는 이유를 황금 까닭으로 생각한다. 그 여인은 쉽사리도 황금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다. 


구보는 일순간 벗의 황금이 본인의 것이었으면 하는 앙칼진 상상을 한다. 이 사내보다 더 소중하게 다룰 수 있으다고 단언하지만 그저 탐나는 그의 재력을 부러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아름다운 여인이 벗에게 미소를 날리는 것에 대한 값어치를 매길 필요는 없다. 벗은 여인의 사랑을 소비하고, 여인은 그의 황금을 소비하는, 서로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며 또 다른 벗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가 만난 다른 벗은 시인임에도 먹기 위하여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를 하고 있다. 그는 문학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지만 하루에 두 차례씩, 경찰서와 도청과 우체국에 들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마땅히 시를 초(草)하여야만 할 그의 만년필을 가져, 그는 매일같이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 이렇게 제 자신의 시간을 가지면 그는 억압당하였던,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쏟아논다."

구보와 벗의 이야기는 구보의 소설로 시작하여 율리시즈로 율리시즈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으로 끝이난다. 벗이 향하는 곳은 이제 집. 그의 열정을 쏟아내는 작업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구보는 끝내 떠나는 그를 붙잡지 않고 황혼을 보낼 또 다른 벗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구보는 이렇게 소설의 내내 방황하고 고독을 일삼으며 자신의 행복은 무엇인지, 그들. 길 거리위 도시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관찰하고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고독을 일상처럼 삼는 것은 다른 이들의 행복을 본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질감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 사랑, 돈, 그럴듯한 직업과 열정. 그에게는 이것들이 부재하고 결여되어있다.  


더 깊은 고독과 사람들의 시선, 개인과 집단과의 갈등만이 동행할 뿐이다. 치열한 고독,외로운 사색등이 도시 사람들의 행복한 면을 대비하여 쓸쓸하지만 한 편으로는 따뜻함을 선사한다.   


구보가 묘사한 사람들은 사랑으로 행복하고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열정을 쏟는 일에 행복을 찾는다. 우리는 그가 일찍이 외로움과 고독으로 사색한 80년전의 모습과 다른 것일까. 우리에게 찾아온 행복은 여러 갈래길로 맞닿아있다. 큰 것부터 시작해서 작은 것까지, 정해진 것이 없는 행복은 어쩌면 찾아가는 것이 아닌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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