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누룽지 Aug 05. 2020

Ep9. 극락 세계로 가능기오?

아홉 번째 방울

"진상!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죽어서 분명히 지옥으로 안 가고 극락 세계로 가능기오?" 하고 그 가는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생전에 이렇게 중대한, 이렇게 책임 무거운 질문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이광수 <무명無明> 中-

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는 진(본인), 인장 위조죄를 가진 윤, 방화로 수감된 민, 사기혐의 정, 공갈 취재 강.

옥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아무런 장치 없이 담백하게 그려낸다. 진은 수감자들의 모습을 연민이 섞인 듯한 표정과 말로 관찰할 뿐이다.


이기적이고 남을 험담하기 바쁜 윤은 병치레를 하고 있는 늙은 노인 민에게 항상 핀잔을 준다. 진에게는 항상 깍듯하면서도 욕심이 많아 진이 남긴 음식까지 먹어치워 밤새 고생을 하곤 했다.


민이 복막염으로 석방된 후, 윤의 폐렴은 나날이 심해져갔다. 간병부에게 그렇게나 아첨을 하던 정과 말 다툼을 하고 검사를 받은 윤은 "쥬고고(십오호- 윤의 죄수번호) 뎀보오(전방)" 간수의 명령으로 독방을 쓰게 된다.


정에게는 본인이 무죄를 받을 것을 확신하며 불경을 외우던 습관이 있다. 한번은 윤이 "흥, 그래도 죽어서 좋은 데는 가고 싶어서, 경을 읽기만 하면 되는 줄 알구, 행실을 고쳐야 하는 게여!"하며 핀잔을 준다.


윤이 전방한 지 이십 일이 지나 계절이 바뀌어 진은 정과 함께 운동을 하러 나갔다. 그런데 저 먼치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상! 저는 꼭 죽게 됐는 게라. 이렇게 얼굴까지 퉁퉁 부었능기라우. 어젯밤 꿈을 꾸닝게 제가 누런 굵은 베로 지은 제복을 입고 굴건을 쓰고 종로로 돌아단기는 꿈을 꾸었지라오. 이게 죽을 꿈이 아닝기오?" 그의 목소리는 전에 들어본적 없는 부드러움이 서려있었다.


며칠 후 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염불을 뫼시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만 하면 되능기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죽어서 분명히 지옥으로 안가고 극락 세계로 가능기오?"


기실 나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여 확실히 대답할 만한 자신이 없었건마는 이경우에 나는 비록 거짓말이 되더라도, 나 자신이 지옥으로 들어갈 죄업이 되더라도 주저할 수는 없었다.

나는 힘있게 고개를 서너 번 끄덕끄덕 한 뒤에, "정성으로 염불을 하세요,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말 될 리가 있겠습니까?"....(중략) 윤은 수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나를 향하여 크게 한 번 허리를 구부리고는 창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본문 中

그 이후 보석으로 나가게 된 윤은 얼마 못가 죽었다.


열악한 옥에서도 서로를 헐뜯고 이기적이던 윤은 베 옷을 입고 종로로 돌아갔다.


민의 말마따나 윤은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었다. 정에게 "행실을 고쳐라"고 하던 윤은 어떠한 심리적 변화로 그의 마지막 순간 진에게 극락세계로 가는 길을 물어봤을까.


그가 행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을 무너뜨린 지푸라기 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의 행실에는 문제가 없으며 민이 살아있었다면 헐뜯을 준비를 할 태세로 똥 뭍은 개가 된 것일까.


그는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온 순간 본인의 행실을 인정하고 터벅터벅 지옥으로 걸어갈 결정을 했을까, 아니면 모두에게 크게 허리를 숙여 극락세계의 발을 디디려 했을까.  그는 나무아미타불을 외웠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Ep8. 눈 내리는 간이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