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누룽지 Aug 12. 2020

Ep12. 눈먼 권위의 슬픔

열두 번째 방울 

리어왕: (셋째 딸 코딜리어에게) 핏줄도 천륜도. 지금부터 너는 영원히 내게 낯선 사람이다.

차라리 야만인 스키타이인이나 부모를 먹는다는 식인종을 가깝게 여기고 동정하며 도와주는 정도로만 한때는 내 딸이었던 너를 대하겠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中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선 자리의 지위에 따라 누군가에게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드높이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살펴볼 두 남자는 그 권위에 눈이 먼 나머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해 버림받은 이들이다.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이 그 주인공이다.


#리어왕


영국의 왕 리어에게는 세 딸이 있다. 첫 째 거너릴, 둘째 리건, 막내 코딜리어. 리어는 세 딸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려고 한다. 대신 본인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과 사랑의 정도를 잘 표현한(아첨을 잘한) 딸에게 차등 지급하기로 마음먹는다. 


거너릴과 리건은 온갖 아름다운 말들로 그의 모습을 형언하기에 리어의 얼굴에서 마치 해가 떠오르는 것 같은 미소를 보인다. 당연히 이에 따라 거너릴과 리건에게는 큰 토지와 축복이 내려진다.  

거너릴: 폐하는 저의 눈보다, 이 넓은 천지보다, 자유보다 더 소중하시며, 값지고 희귀한 그 어떤 것보다 더욱 귀중하시며, 은총과 건강, 아름다움과 명예로 충만한 목숨만큼 사랑하며....(중략)....

리건: 언니(거너릴)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정말이지 모두 다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다만 언니의 말에 부족한 것이 있으니, 저는 가장 섬세한 감각을 가진 인간도 빠져 버릴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저버리고, 오로지 아버님을 사랑하는 일에서만 기쁨과 행복을 찾겠습니다.


그러나 막내 코딜리어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라서 사랑하는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왕에게 말한다. 당연히 리어왕은 이런 딸에게 이방인을 보듯 무시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권위가 아니라면 버림을 택하겠다는 리어왕의 태도는 이후에 자신을 멸망으로 이끈다. 


그렇게 셋 째는 프랑스 왕과 떠나고 거너릴과 리건은 이제 아버지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 가장 아꼈던 코딜리어를 한 순간에 내쫓고, 본인들은 땅과 권력을 얻었으니 자리에 앉아 오늘이나 내일이나 왕이라는 권위를 남용하는 리어를 옹호하고 보살펴줄 이유도 없다. 그는 그저 괴팍하고 경솔한 늙은 노인에 불과하다. 


리어는 이런 두 딸들에게 코딜리어가 그에게 당했듯 똑같이 아니, 더 처참하게 외면당한다. 동물들도 피해 가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그는 정신의 끈을 놓아버린다.


#글로스터 백작


리어를 모시는 충신 글로스터 백작.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친아들 에드거, 양아들 에드먼드. 에드먼드는 교활한 충성심을 가진 인물로 본인이 서자이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상속이 한이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 글로스터가 형 에드거를 증오할 만한 일을 꾸민다. 

글로스터 백작: (에드먼드가 건넨 편지를 읽는다.) "노인을 공경하는 지금의 정책이야말로 젊은 우리의 한창때를 비참하게 만들고, 우리가 늙어 즐길 수 없을 때까지 상속받을 재산을 묶어놓고 있다...
(중략)...

나를 찾아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더 논의해 보도록 하자. 내가 깨울 때까지 우리의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기만 한다면, 아버지 재산의 절반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될 것이고, 너는 영원히 형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에드거."


글로스터는 권위의 추락이 두려웠다. 죽음으로 인해 건재한 자신의 모든 것이 양도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경솔한 명령은 에드거를 잡아 추궁하고 내쫓아 다시는 이 궁전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권위의 몰락은 곧 그의 목숨과도 같았을 것이다. 곧 글로스터는 자신의 첫째보다 더 처참하게 두 눈이 뽑혀 추방당한다. 그리고 에드먼드는 스스로 글로스터 백작이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권위야 말로 이들이 왕과 백작으로 설 수 있는 가장 큰 명분이었다. 권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자리에 이 둘은 눈이 멀었다. 눈이 먼 자의 말로는 가문의 몰락과 버림받음으로 최악을 향해 달려간다. 


리어가 가장 사랑했던 딸 코딜리어에게 조금만 더 진솔했더라면, 글로스터가 첫째 에드거를 조금만 더 신뢰했다면. 비극의 서사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 편으로는 두 사람의 몰락이 아니었더라면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에 들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이들의 비극은 더한 슬픔이 되었다.


요근래 유튜브의 '뒷광고'에 대한 이야기들로 떠들썩하다. 한 마디로 광고나 협찬임을 숨기고 사람들에게 하여금 상품에 현혹되게하여 홍보의 효과를 통해 소비자의 구매를 증가시키는, 크리에이터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 큰 아픔을 주는 것이다. 


이들은 구독자 적게는 몇 십만에서 많게는 몇 백만의 인구를 그저 본인의 위세와 위신을 협찬과 광고 기업체에게 그저 잘 보여 수익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며 기만했다는 것이다. 


본인의 권위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그릇된 선택을 한 이들은 버림받은 리어왕이나 글로스터 백작과 다르지 않다. 권위를 남용하고, 본인이 무너지는 것이 무서워서 거짓을 말하고 그저 자신의 앞날만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만한 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Ep11. Next Leve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