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방울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
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
(延長)이옵기에-
이제 창(窓)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
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
대로 비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
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941)
시인 윤동주.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 1945년까지 무수한 작품들을 쏟아냈고 우리에게 '시'라는 아름다운 문학을 접하게 한 지식인 중 한명이면서도 일제 속에서 참된 글소리를 낸 청년이다. 30을 넘기지 못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 세상의 광복을 바랬던 그가 써내려간 시는 방황과 고뇌, 불안과 열병,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끝을 흐리지 않는다.
그의 시를 순차적으로 보면 자신의 소극적인 저항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고한 다짐으로 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24세가 되던 해, '돌아와 보는 밤'이라는 시를 쓴다.
어둡고 불안정하지만 그나마 나만의 공간이라는 좁은 방에 들어선 그는 어지러운 세상살이와 일제의 탄압이 도사리는 낮을 볼 자신이 없어 불을 켜둘 수 없다. 회피하고만 싶은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참담하다.
창이라도 열어 그의 방이 주는 소속감과 밖의 세상보다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공기가 순환 되기를 원하지만, 결국 불안정한 방과 낮과 다를 바 없는 어지러운 세상에 더욱 암울한 상황으로 그는 비를 바라보며 용기를 내지 못한다. 혼란스러운 그의 자아가 '세상은 바꿀 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응어리를 앓고 있을 뿐이다.
어딜보고 바꾸어 보려하여도 그 설움을 씻을 수 없었던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아 흐르는 신념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저 멀리 너머로 보이는 광복의 꿈을 꾸며 본인의 마음이 익어 가는 것을 느낀다. 윤동주가 설움을 씻을 수 없는 방안에서 눈을 감고 본 것은 국민의 환호소리였을 터, 그는 실낱 같은 희망을 다시 잡아본다.
윤동주가 평생을 염원했던 평화는 찾아왔다. 그가 방황했던 세상도 안정을 되찾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평생을 고민해왔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은 그의 고결한 시로 대체하려한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그는 세상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