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진면목, 트라카이(부제:여기에는 분명 엘사가 살거야)-2
#트라카이에는 엘사가 살지도?
트라카이성에 도달하려면 두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엄청난 추위를 만났다. 빌뉴스가 저번 달에 갔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두 나라보다, 잠깐 들렀던 폴란드보다 확연히 추웠지만, 우리나라의 든든한 패딩으로 다니기엔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호수에서 부는 바람이 온몸을 강타하며 찬 공기를 맞아야 했다. 구름이 하늘의 군데군데를 지날 때 나오는 햇빛이 물가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호수와 가까운 낮은 집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TV에서 볼 수 있었던 북유럽의 어딘가와 흡사했다. 장관의 모습이었던 이곳은 어렴풋이 겨울왕국의 엘사가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이곳의 풍경도 그렇지만, 추위가 한 몫을 했다. 겨울왕국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매우 시렸다.
아름답던 북유럽의 어딘가 같은 세상을 선사해준 첫 번째 다리를 지나 두 번째 다리 앞에 섰을 때는 눈을 뜨기 힘든 추위에 맞서야 했다. 왕국이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겨울의 왕국은 다리를 건너와서야 우리를 맞이했다. 트라카이성은 붉은 벽돌로 쌓은 견고한 성이었다. 적들의 눈에 누구보다 잘 띄었겠지만, 이 호수를 뚫고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견고한 이 성도 몇 번의 재건을 거쳤다고 한다. 17세기에 일어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모스크바 대공국의 전쟁에서 크게 손실되어 반복적인 재건을 했고, 20세기 중엽에 와서야 파괴된 부분을 마무리 지었다. 아픈 역사를 지닌 이 성은 리투아니아의 국장이 늠름하게 휘날릴 뿐이었다. 곧장 대문으로 들어섰다. 이 성은 볼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어서, 바로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다. 넓은 마당이 있으며 멀리 보이는 성곽 안의 성으로 사람들을 따라 이동했다.
나는 영화에서 보던 성의 대문이 내려와 구획을 연결하는 모습이 그렇게나 고전적이면서도 멋들어진다고 생각해왔다. 성곽으로 꽁꽁 싸맨 성이 나의 그런 로망을 어느 정도는 받아주었다. 대문도 아니고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내려와 연결되어있는 다리를 건너 상상 속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며 성으로 들어섰다. 네모난 회랑이 눈앞에 나타났다. 구조가 특이한 이 성은 철계단을 통해 올라가서 각 모퉁이를 돌아 사각형을 그리며 각 방의 전시품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 길이 넓지 않아서 일렬로 서서 한 방에 들어갔다. 오래된 이 방에 더 오래된 기록들이 놓여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어 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관리인이 사진을 찍으려면 입장권 판매소에서 따로 사진 촬영까지 가능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고 했다.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트라카이성은 그동안 전쟁의 기록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맨 옥상으로 올라갔다. 먼 곳으로 탁 트여 전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문을 열어 바깥세상을 볼 기회는 아쉽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작은 기념품 가게가 우리를 맞이할 뿐이었다.
#어디서도 보기힘든 신비함의 연속
관람을 끝마치고 허한 기분을 달래려 성의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성의 대문을 나서기 전 우리와 갈라졌던 인도인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린 이미 다 봤는데, 뭐하다 왔냐니깐 배고파서 키비나이를 먹고 왔단다. 키비나이가 입에 맞는다며 다시 싱글벙글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만남을 뒤로 성벽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키비나이가 입에 맞는다라..
오랜 세월에도 견고함과 정교함이 묻어나오는 이 성은 정면에서의 촘촘한 짜임새를 엿볼 수 있었다. 평범한 돌들을 지지대 삼아 빈틈없이 쌓아 올린 붉은 벽돌들이 인상적인 반면, 옆면은 이끼가 끼고 색이 바랜 벽돌이 지난 시간을 볼 수 있게 했다. 내가 위치하는 성의 면마다 색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낭만적인 호수 위의 성에 대해 궁금해진 것은 물과 가장 가까운 땅이었다. 땅의 끝자락이 호수 위에 단단하게 서서 버티고 있는지 아니면 밟으면 쑥 파일 것 같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식물과 같은 느낌일지. 확실하게 묘사하고 전할 수는 없지만, 호수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 아무래도 생소하지 않았나 싶다. 눈이 덮여 있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니 딱딱한 땅이 아니라 부유물처럼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오묘한 느낌이었다. 시선을 따라 보이는 반대편의 흰색의 궁전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