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때까지 안녕!(1)
#정적인 마지막날 밤
새벽의 문을 지나 어제도 지났던 밤의 거리를 걸었다. 새벽의 문으로 올라올 때, 내려갈 때, 사뭇 기분이 묘했다. 잠깐이었지만 나에게 새로운 볼거리와 추억을 선사해준 이곳이 그리울 것 같았다. 다른 곳들이 안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곳이 정이 간다. 아직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벗지 않은 이곳 음식점에 보이는 행복한 미소들이 계속 남아있길 바랐다.
저녁은 간단히 숙소에서 뜨끈한 육개장과 후식으로 오렌지 코코볼을 먹어줬다. 오랜만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유튜브도 보고 네이버 기사도 보고, 내 유일한 사치품인 손목시계 다음 시계는 어떤 걸 살까 하며 정보도 찾아봤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시계를 만들지 않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다가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렸다. 나도 모르게 졸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려 본 사람들만이 아는 그 놀람과 짜증이 자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원하는 시계도 생기겠지 하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오늘로써 끝
이곳의 여정도 오늘로써 끝이다. 눈을 부비고 일어나 커튼을 쳤을 때 깜깜한 밖을 보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짐을 싸는 것은 언제나 감회가 다르다. 어느 날은 귀찮고 다 내동댕이치고 싶다가도 작은 추억과 선물을 담을 때는 어서 차곡차곡 넣고 싶다. 빌뉴스 공항에서 폴란드의 바르샤바행 오후 비행까지 시간이 남았다. 리투아니아의 공립대학, 빌뉴스 대학교를 가보기로 했다. 한참을 헤맸다. 대학교 건물이 여기저기 흩어진 건지 주변을 빙빙 돌다 겨우 입구를 찾았다. 대학 내의 관람은 9시부터 가능했다. 이곳은 정문이 아니라 대학의 도서관이 있는 교정이라고 한다. 8시 50분부터 가서 대학의 도서관 교정을 둘러봤다. 우리나라 대학은 정문부터 화려하고 그럴싸한데 이곳의 입구는 그러하진 않았다. 빌뉴스 학당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이곳은 450년의 역사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우리를 도서관으로 안내했다.
사실 우리가 기대한 책이 많은 도서관은 아니었다. 오래된 기록을 보관한 기록보관실이라고 하는 게 더 맞아 보였다. 중세시대에 의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원형 탁자와 은은한 주황빛의 조명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서의 모습들을 감상하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신고전주의의 양식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성 요한 교회와 벨 타워가 있는 대교정을 지나 Littera라고 하는 교내서점에 들어갔다. 눅눅한 냄새가 서점 안을 둘러쌌다. 마치 오래된 책이 그대로 방치되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냄새 같았다. 아치형으로 생긴 천장과 그를 수놓은 그림들이 특이했다. 어느 신화의 한 장면을 천장에 새겨 놓은 것 같았다. 기념으로 영어로 된 리투아니아 역사책을 구입할까 싶었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산 원어 서적들의 개수를 가늠해 보았을 때 깔끔히 포기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이번에는 안내인이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리투아니아 문헌학 센터의 프레스코 그림이 그려진 곳으로 향했다. 프레스코 기법은 새로 석회를 바른 벽에 그것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기법으로 그리스 크레타섬의 크노소스궁전 벽화가 이 기법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언뜻 보면 리투아니아에 그리스 로마의 옛 건축양식과 예술의 흐름이 많이 닮아있었다. 실제로 그리스를 갔을 때, 묘하게 리투아니아의 모습이 그리스의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의 시초에서 엿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센터의 일련의 그림은 아치형의 높은 천장에서 발트의 신화를 그려내었다. 또한, 사계절이라 불리는 이 그림은 고대의 세계질서까지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림들이 기괴하다고 느껴졌다. 그림체라던가 사물들의 적나라함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인간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다소 무거웠던 관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