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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Oct 25. 2022

도시편집자 2 : 내 자리, 나의 일

자기실현과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균형 잡기

같은 만남을 가져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은 다릅니다. 각자 얻어 가는 결과도 그만큼 다르지요.

따뜻한 여름 비가 내리는 저녁 들었던 전주 뜻밖의 미술관 김성혁 센터장님의 이 강의는 쇠락한 도시에 새로운 삶을 불어넣은 사례를 다뤘습니다.

전주의 폐쇄된 홍등가에 지역 예술가의 손길을 불어넣어, 새로운 역할을 하게끔 창조하는 작업처럼 말이지요.

제가 인상 깊게 받아들였던 건 그 사례보다, 지역에서 도시를 '편집'하는 사람으로서 강사님의 자세였습니다.

사실 예술로 먹고산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예술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수립해 나가는 주체로서는 더욱 그렇지요.

한 줄로 규정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바닥이 없는 길을 거니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나와 나의 행위를 어떻게 부연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취업이 잘 된다는' 언론학부를 뛰쳐나와, 미대에 갈 때의 제게는 예술가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있었지요.

뭐 엄청나게 진지한 자세는 아니었습니다만 - "대학까지 그만 둘 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냐?" 단언하는 순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미술에 잠기면서는, 오히려 미술과 저 자신의 관계를 두고 깊이 고찰하게 되었어요.

저는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미술의 궁극적인 기능인 자기표현 - 나는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 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가?"

답은 아니었지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었어요.

그때부터 사회에 봉직하는 예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거운 화두는 현재 진행형이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 그렇게 결심을 하고 보니 또 변명할 거리가 한 다스더라고요.

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지 않는지, 왜 학원을 할 거면 크게 해서 돈을 쓸어 담지 않는지, 왜 한 명씩 앉혀 놓고 가르치고 있는지…

남도 묻고, 저도 묻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만큼이나 수고하며 살지만 거두는 것이 적어 보이는 이 삶, 바보 같아 보이는 손해의 연속.

물론 '내가 가고 싶은 자리보다, 날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자'는 둥 그럴싸한 핑계를 잘 지어두기도 했습니다.

달리 살라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성정이라 지금 같이 살지만, 가끔 분통 터지는 날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강사님의 강의가 인상 깊었던 건 바로 그 지점입니다.

예술을 사회에 녹여내는 전문가로서, 놀라울 만큼 분방한 자세를 취하고 계셨거든요.

일례로 강사님이 한 사업을 두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 작품 전시할 곳이 없는 젊은 예술가의 그림을 토박이 상점들에 가져다 걸고 한두 점씩 판매하는 흐름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한 마디 덧붙이시는 거예요. "모든 수익은 예술가에게 돌아갑니다."

저 같은 사람은 또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럼 강사님이나 강사님이 대표로 계신 사업체는요?'

가난한 아티스트에게 어려울 줄 알지만 작은 삯이라도 치르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하지 않나 떠올려도 보고, 사업을 주관하는 사회적 조직체의 원동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겁니다.

누구든 제 주머니가 좀 차야 다른 사람의 어려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시스템이 언제까지 개인의 호의에 의탁하기만 할까. 아니 - 희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이타적인 시스템이란 게 존재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생각은 그렇게 잡다하게 흘러도, 강사님과 동료들의 세세한 활동을 들여다볼 적에 마음에 분명한 애틋함이 솟아 올랐습니다.

근심 어린 눈으로, 또 찬탄하는 눈으로 행복해하는 전주 사람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애틋함에 까닭을 붙여 봅니다.

그래, 기회가 있을 때 행하는 것이 옳구나.

결과를 두고 복잡하게 번민하거나, 냉소적으로 문제점을 짚어 내기보다 - 일어날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또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밀고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음이 아름답구나.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때로 후회할 지라도 그 순간을 툭툭 털어내고 하던 대로 살아가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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