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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Oct 28. 2022

도시편집자 3 : 감당할 수 있는 속도

도시의 변화 소화하기

고등학생 시절 춘천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 우두동 강변, 높아봐야 3층인 야트막한 건물의 연속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널따란 강의 귀퉁이를 따라 줄지은 자그마한 상가들… 토박이가 들으면 우스울 얘기겠지만, 정말 시골이구나 싶었어요.

춘천의 참 매력을 깨달은 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부터였습니다.

학교 근처 즐겨 찾던 가게가, 방학을 나고 다음 학기에 가면 없어져있기 일쑤였어요.

누군가에게는 그 속도가 생동감 넘치게 느껴질 수 있었겠습니다만, 제게는 좀 슬프게 느껴졌어요.

'영원한 것' - 또 영원한 것에 대한 희구.

삶과 죽음을 두고 고찰함도 사실은 이 영원함에 대한 발상에서 나오지요.

어린 시절 미숙하게 영원을 선망했던 그 마음에 춘천은 참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변하고 발전하기는 했지만, '소화할 수 있는 속도'였거든요.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충분히 하고, 바뀜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말이에요.

이를 통해서 마침내 변화가 세상의 커다란 속성 가운데 하나고, 그 속에 이를 더디게 하고자 노력하는 손길이나 - 바뀌는 바를 기록하고 애틋하게 기리는 마음까지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김헌 학예 연구사님의 강의를 들었던 날은, 나와는 또 다른 방향의 열정을 가진 사람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사님은 막 기증받은 따끈따끈한 춘천의 옛 사진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셨어요. 

옛 국토 관리 관련 업종에서 일하시던 기증자님이 폐기될 자료에서 일일이 손으로 뜯어 내어 보관하시던 사진이었지요.

명동, 육림 고개, 공지천…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장소의 옛 모습이 시대 별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사진 한 장, 한 장 설명하시는 강사님 모습이 어찌나 신나 보였는지 몰라요.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제대로 운영되거나 보존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방치되어 있는 건축물 역시 하나씩 이름을 불러 가며 알려 주셨어요.

"기억해 달라." 그 자리에 있는 우리라도 - 그런 의미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연합 체육 대회를 하고, '운동장'하면 떠올렸던 그곳을 추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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