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모두의 것으로
'문화로 먹고 산다'라고 말할 때 -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건 아티스트로서의 삶일 것입니다.
그림을 파는 화가, 노래를 파는 가수, 글줄을 파는 작가…
사실 문화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의 폭은 훨씬 더 넓습니다.
예를 들어 드로잉 개인 레슨을 하는 저는, 대상에 맞추어 그림을 가르치는 그 기술로 먹고 삽니다.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 예술과 행정 체계, 또 이를 누릴 시민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이라고 하면 알맞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든 이 모든 문화적인 '밥줄'은 두 가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기 마련입니다.
하나, 먹고살 만큼 벌기 - 또 둘, 내가 먼저 즐겁기.
이 독특한 계열의 밥줄이 다른 직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벌이를 생각해선 차순위가 되기 일쑤라는 것이 아닐까요?
밀레니엄 세대에 미술을 전공한 저만 해도 말입니다, 사범대 계열과 동시 합격을 했을 때 - 교사가 돼라 에둘러 권유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더랬습니다.
부유하지도 않은 집의 장녀로서, 뭘 먹고 살 거냐는 요지였지요.
그때만 해도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를 신조처럼 여기고 있었기에 그저 되는 대로 밀고 나갔고,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돌보고 도와야 할 사람들이 생기고 나서는 금전적 역할과 나의 즐거움을 또 억지로 두드리고, 깨고, 끼워 맞추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싶네요.
강릉 '소집' 고기은 대표님의 강의는 또 다른 나의 경험담이자, 소소하고 따뜻한 예시였습니다.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해답, 또 이야기는 낯설기만 하기 일쑤입니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전문가를 찾아가기보다 자신이 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먼저 질문을 올리는 건 전문가보다 이웃이나 친구의 정다운 목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사님이 자신의 관심사로부터 이야기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우른 후 마침내 지역에서의 역할을 찾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범상합니다.
작은 것을 가만히 응시하는 그 지긋한 시선과 끈질긴 발걸음으로, 지역 사회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입 속에 맴도는 이야기 한 가지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이나 머릿속을 채운 폭죽 같은 생각의 다발은 더욱 다양합니다.
각자의 관심사가 맞닿는 지점이 생길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 그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지역 사회에서의 문화란, 이러한 접점이 더욱 촘촘하게 생기게끔 그물망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 아닐까요?
전통이 해체되며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더욱 짙어지는 오늘날 - 가장 개인적인 취향의 문화야말로 서로 다른 세대와 성별, 그 외의 차이를 엮어내는 효과적인 날줄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