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 장소
사실 '도시편집자' 프로그램에는 처음에 주어진 중심 소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도시 속 나만의 비밀 장소'였지요.
우리 모두는 자신이 생각하는 비밀 장소를 하나씩 골라 짧은 소개와 함께 공유했습니다.
제가 고른 저만의 비밀 장소는 '길'이었습니다.
지난 십수 년 간 저는 춘천의 여러 길목을 오래 키운 개와 함께 참 많이도 쏘다녔습니다.
시내 어지간한 곳은 대략적인 구조를 알고, 어디 가면 어떤 맛있는 걸 파는지 속속들이 알 정도였지요.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는 전처럼 많은 시간을 길 위에 쏟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어딘가를 방문하면, 기억 속 그 자리에는 전혀 다른 건물이며 낯선 기물이 들어찼기 마련이었어요.
그 옛날 내가 앉았던 평상이나 독특한 옷을 파는 가게, 미지근한 맥주를 파는 노포는 사라지고 없었지요.
반면 쉽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길의 모양이 어떻게 달라졌든, 늘 같이 흐르는 계절이지요.
몹시 늙어 콘크리트 살갗을 뚝뚝 떨어트리는 아파트 단지에도, 10년대 들어 유행하는 넓은 창을 지닌 카페 뜰에도 가을빛은 물듭니다.
어느 순간 햇빛은 더 진해지고, 사물의 가장자리에 오렌지빛을 얹습니다.
춘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물길에는 비늘 같은 가을이 유유히 반짝입니다.
매년 무진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계절이야말로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몫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도시편집자'의 기획인들은 우리 각자가 도시 속 비밀 장소를 짚어 보면서, 사라진 것은 추억하고 - 사라질 것은 남기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멋진 생각입니다 -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간이 도시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만물이 거치는 작고 큰 단계가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이 함께 부른 이 곡은 지나간 옛사랑을 노래합니다.
당신이 모자를 어떻게 썼는지
또 차를 홀짝이던 모습도
그 모든 기억들은
아니, 아니, 누구도 내게서 앗아 가지 못해
별것 아닌 습관이나 작은 동작도 애틋한 마음이 더해질 때 특별해집니다.
도시의 어느 한 구석이 전혀 다른 껍데기를 쓰고 새로운 역할을 도맡더라도 그곳에 서린 한 순간, 순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그리운 기억을 되짚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마냥 한 방향은 아니구나 깨닫게 됩니다.
오늘 속에 어제가 스며 있고, 또 내일이 어렴풋이 보이니까요.
감상적인 얘기는 이제 접어두고 - 기억을 한 줄로 정의하자면, 저는 '내 속에 지어둔 사라지지 않는 집'이라고 하겠어요.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만큼 시시한, 그러나 반짝이는 비밀이 가득 차 있겠지요.
이제 제 비밀 장소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여러분의 비밀 장소는 어디인가요?
① 삼각형 지붕에 당신만의 비밀 장소를 적어요.
② 네 개의 기둥에 비밀 장소에 대한 기억을 적어요.
③ 기둥의 굵은 실선은 오리고, 점선은 접어 세워요.
④ 네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붙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