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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Nov 12. 2022

도시편집자 6 : 또 다른 비밀 장소들

내가 만난 도시 속 문화 공간들

한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가 어디일까요?

우선 서울의 63 빌딩이나 과천의 서울대공원, 춘천의 레고랜드 같은 랜드마크를 들 수 있겠고, 그다음은 아마 맛집일 겁니다. 

교통, 법, 행정, 교육 등 인프라 관련 시설이 그다음 - 또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적 문화 공간이 뒤따르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춘천의 또 다른 비밀 장소는, 각 도시마다 있지만 은근슬쩍 숨어 있는 시민 고유의 문화 공간입니다.

'아르숲'은 효자동 주택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르숲 주변에는, 주로 일용직 노동자가 장기 숙박하는 오래된 모텔과 여관 - 또 그들이 월식을 대고 먹는 식당이 즐비합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산책하기 좋은 복개천도 자리했지요.

산책을 즐길 때 아르숲의 모습을 종종 훔쳐보곤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보다 조금 더 사회적인 일을 하고 싶다 결심을 한 터였지만, 레지던시 모집 공고에 눈길이 가는 건 멈출 수 없었거든요.

한 길을 붙들고 가기로 한 사람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은 아마 제 평생을 두고 지속될 겁니다.

아르숲은 그 역할과 더불어 용모도 자주 바뀌었습니다.

주변의 모텔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말쑥하기만 하기도 했다가, 또 어느 틈에는 열대 도마뱀처럼 화려한 색깔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보라색 옷을 입고 노회 한 옛 집들의 군집에 턱 걸터앉은, 아르숲.

지금의 아르숲이 맡은 배역에 이름을 붙이자면 - 학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민들은 환한 조명 아래 모여 앉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나눕니다.

건물 전체에서 흐르는 따뜻하고 관조적인 분위기는 이 학습적인 광경을 더욱 부드럽게 감싸곤 합니다.

시민의 자생적인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장소로서 기능하는, 지금의 아르숲.

모든 변화가 다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공간의 역할이나 변화의 방법론을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갈등과 이를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아르숲은 도시와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퇴행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것이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안녕하우스'는 옛 도시공사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 춘천사회혁신센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단단한 목조로 장식되어 있는 직사각형의 건물이지만, 독특하게도 광장의 인상을 줍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창 때문일까요, 어쩌면 여러 사람이 모여 생각과 느낌을 나누게끔 구성된 공간 자체의 목적성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바깥쪽에는 오래 묵은 얕은 건물의 무리와, 좁고 복잡한 골목 - 또 녹색 잔디가 있는 비정형의 뜰이 보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질감과 색감이 안녕하우스 주변을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노란색'을 떠올릴 때, 각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색깔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색의 기운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색으로서의 노랑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오후에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해의 탁한 황색이 우선일지 모릅니다.

맑고 천진한 레몬빛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요.

문화에 대한 개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문화란, 오뜨 꾸뛰르처럼 정제된 - 그 배경을 하나, 하나 짚어낼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일련의 예술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생태에 맞추어 때로는 실용적이고, 어느 때엔 예술 중심적으로 기능하는 지역 사회의 일부로서의 의미가 가장 클 것입니다.

저라는 한 개인에게 문화는 사람의 생각에 접근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써 귀중한 가치를 갖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의 여러 조각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안녕하우스는 참 재미있는 메타포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공간은, '도시편집자'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던 '모두의 살롱 후평'입니다. 

모두의 살롱은 아르숲 뒤편, 효자동에도 한 곳 감추어져 있어요.

재미있는 점은 둘 모두 언뜻 봐서는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해 떨어진 후엔 더욱 그런데, 그런 점이 - 이미 존재하던 구옥을 되살려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처음부터 주변과 하나였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지요.

모두의 살롱은 시민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합니다.

그런 만큼 특별한 점이 있어요.

살롱에서 이루어지는 모임과 그 흐름에 따라, 공간 자체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진 모임을 하고 나면, 자그마한 이미지가 벽 한가득 콜라주 됩니다.

작은 식물이 심긴 포트가 줄지어 놓여 있기도 하고요.

근사한 풍선이나 반짝이는 가랜드가 내걸리기도 해요.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옛 안내판처럼 - 또 이웃의 소식을 전하는 시보처럼, 살롱은 살아 움직이는 소식통으로 기능합니다.

비언어적인 목소리를 짚어나가는 그 즐거움… 방문해본 사람만 알 거예요.

모두의 살롱 후평에서 '도시편집자' 모임을 가진 날의 기록

춘천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문화 공간이 존재합니다.

시민의 관심을 통해 구조를 갖춰가고, 결실을 맺는 유기적인 장소지요.

아마 다른 도시에도 여러 사람이 씨 뿌리고 기르는 비밀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름을 짚어 보고, 기억하고 - 또 그 속에서 들풀처럼 일어나는 움직임에 몸을 맡겨 보는 일도 참 즐거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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