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n Oct 14. 2022

도시편집자 1 : 참여자로서 처음 만나는 문화 프로그램

학습이냐, 일이냐, 취미냐…

주된 관심사는 항상 문화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였던 저는 행사 참여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대학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졸업장도 받아오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가끔 소소하게 열리는 전시나 공방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면서, 재미있겠다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목적이 있는 활동을 같이 한다니 - 사서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여겼어요.

혼자 노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몇 가지 활동을 운영하면서, 혼자서는 한계가 있구나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스스로 무엇이든 해결하려는 자세가 오히려 내가 돕고자 하는 대상의 기회를 제한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즈음해서 도시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멘토링과 재정 보조를 받아, 당시 꾸려나가던 활동의 새로운 가지를 지어 나갈 수 있게 되었지요.

당시에 저는, 도시가 시민에 갖는 태도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시 주도의 사업이란 상당히 경직되고 결과 중심적인 이미지였어요. 

아마 지금도 여러 구석에서는 그럴 것입니다 - 또 세금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지녀야 할 엄중한 일련의 흐름이 있을 테고요.

그런데 그때 도시는, 어설프게 꾸려 나가는 제 소소한 사업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었어요.

대학 다닐 때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으로부터 받았던 시선이었지요 - 부족함이 있을 때 이를 당장 개입해 해결하지 않고 충분히 남겨 두며, 이를 통해서 스스로 혁신을 기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두는 방식 말입니다.

교육자나, 양육자로서도 쉽게 지닐 수 없는 자세예요.

비록 세세한 잡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도시라는 시스템이 지향하고 표방한다는 자체가 놀랍게 느껴졌지요.

당시 느꼈던 소감은,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시점에 간단한 만화로 기록해 두었어요.

이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제가 너무 오래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았나 싶었습니다.

제가 다시 만난 도시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닫힌 관계와 사고, 평가 위주이기에 그룹과 색채가 다르면 배척받는 세계가 아니었어요.

'도시편집자' 프로그램을 소개받았을 때, 선뜻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주제와 소재 면에서 자유로운 기록이 보장받으리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몇 가지 활동을 함께 했지만, 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입장이었어요.

흡수하는 참여자로서는 첫 경험을 하게 된 셈이지요.

'도시편집자'는, 간단히 말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의 명멸을 기록하는 활동입니다.

활동 내역에 세세한 제어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상기했던 바, 여유 공간을 두는 데서 나오는 새로운 발산을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프로그램에 단점이 있다면, 또렷한 규격이 없음을 인해서 참여자는 혼란을 느끼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로부터 참신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겠지요?

타고나기를 죄의식이 깊은 저는 만사를 접할 때 늘 변명의 여지를 만들곤 합니다.

그러한 성정으로 인해서 어려서부터 삶의 이유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던 것 같아요.

'도시편집자'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며, 이와 같은 저의 '구구절절한 변명' 레퍼토리를 도시와, 도시가 꾸려 나가려고 애쓰는 문화 사업으로 확장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작가, 사회운동가, 학예사, 공무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주의 깊게 설계한 도시의 문화 프로그램, '도시편집자' - 이를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저는 한 자리에 모인 시민들이 프로그램에 반응하는 모습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만들어준 '여지'를 두고 남기는 아름다운 변명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이전 01화 Prologu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