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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Jun 16. 2021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하찮고 쓸모없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하는 것마다 안되고 내가 아니었으면 더 잘 될 수 있었을 것 같은 순간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철 없이 방황하던 시간도 있었고, 집안에 힘든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겉에서 보이기에는 멀쩡해서 오히려 잘 사는 것 같이 보이곤 했던 그런 시간들. 어른이 되어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니었으면 더 잘 되지 않았을까? 이게 나중에 나에게 무슨 커리어가 될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수 없이 되풀이하곤 했다. 그때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그것 밖에는 답이 없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하나의 긍정적인 생각이 어려웠던 시간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 모든 순간들을 버티고 지나쳐와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시간들 덕분에 많은 걸 배우게 되었고 내 인생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 덕분에 어쩌면 쓸모없는 일이라고 느꼈던 그것들이 결국에는 또 다른 나였고, 그 안에서 다른 곳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무언가를 배우고 왔다. 사람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혹은 그 순간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늘 언제나 감정이 깔려 있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일말의 감정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 순간들을 그냥 지나치기 더 어려울 뿐. 내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그 시간을 이겨낸다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얻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모든 순간들을 다 그렇게 극복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나도 말 못 할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고 힘든. 처음에는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가 왜 그렇게 거부반응을 하는지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일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가끔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문득문득 생각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유를 알고 나니 나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를 알고 인정하고 그것과 마주 볼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할 때 강요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의 선택을 존중할 뿐. 가끔 사람들과 있다 보면 세상 오지랖퍼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나는 좀 독립적인 성향으로 간섭이나 참견받는 걸 싫어하고 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뿐.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느낀다.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그게 틀린 게 아니란 걸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본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말에 다른 사람은 너무 힘들어하고 또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다. 좋은 의도, 좋은 말이라고 해서 그게 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기 때문에 어쨌든 버티면 그 순간들은 지나오게 된다. 하나의 힘든 과정일 뿐. 그 과정을 누군가는 묵묵히 버텨 낼 것이고 누군가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묵묵히 버텨 내지도 그렇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된 시간이라는 생각은 이제 더는 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내가 완벽하다거나,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라거나 한 건 아니다.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옛날에는 이런 내 모습을 봤을 때 더 성공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난 왜 더 잘하지 못하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는 의욕이 없어진 거 아니겠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성공할 필욘 없으며 지금 현재에 만족하고 돈도 관짝에 들고 들어 갈 거 아니면 살아가면서 남한테 빚지지 않을 정도로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란 생각을 한다. 풍족하진 않더라도 부족하진 않은 그런 정도. 물론 부족의 기준이 사람 개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부족은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게 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지금의 내가 어떻든 지금의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 어느덧 나도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 주변 변하는 상황에 나를 끼워 맞춰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만족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심지어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까지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시간들이 나를 더 몰아세우고 나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또 그 시간 속에 있던 나는 알지 못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있던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긍정적일 필욘 없다.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지 긍정적인 사람이 좋다고 해서 억지 긍정을 만들어 낼 필욘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내가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할 필욘 없는 거 아닐까? 나이 들면 들수록 느끼는 거지만 많은 사람들과 다 좋은 관계일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 딱 그 선에서 각자 편한 대로 사는 거지. 그런 거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심플하게 생각하자.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데 가끔 사람들을 마주하면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 너무 앞 서간 미래에 있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과거의 시간을 지나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고 현재의 시간을 지나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쓸모없는, 혹은 너무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생각을 했던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그게 결코 꼭 그런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 그 시간을 꼭 잘 헤쳐나가고 무언가의 액션을 취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면 나름의 유의미한 의미가 있던 과정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잘 이겨낼 필요 없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 극단적인 선택만 하지 않는다면 분명 시간이 지나서 그때 그랬었지. 그때 참 힘들었는데 하하. 하며 이야기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란 거다.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과거에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내가 잘 버텨내야지만 좀 더 나은 미래의 내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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