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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으른 뇌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달린다.

뇌를 치료하는 의사가 20년 동안 달리며 알게 된 것들, '길 위의 뇌'

by 글로 나아가는 이

"길 위에서 꾸준히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건강한 뇌와 몸을 지켜줄 수 있다."


-마라톤 매니아, 재활의학과 전문의, 정세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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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정세희 교수가 쓴 '길 위의 뇌', (오른쪽) 2022 베를린 마라톤에 참여한 서울특별시보라매공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정세희 교수. 정세희 교수 제공




▲뇌는 행동하고 운동할 때 바뀐다


"뇌는 바뀐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뇌가 아무 이유 없이 바뀌진 않는다. 환경이나 자극에 의해서 바뀌기도 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는 동안 바뀌기도 한다. 축삭돌기나 시냅스, 투사, 신경전달물질 등 아예 뇌의 구조가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뇌가 바뀌는 것을 '뇌가소성'이라 부른다."


"제가 환자분께 달리기를 권했던 이유는 뇌 건강을 돕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 체력 증진, 인지기능 회복의 목적도 있지만, '나 오늘 적어도 이거 하나는 완수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 '오늘 너 좀 괜찮구나'하는 자기 격려처럼 달리기로부터 얻는 긍정적인 심리효과도 정말 크기 때문이에요."


-재활의학과 전문의 정세희, '길 위의 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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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좋아하고 누구보다 달리기를 권유하고 싶지만, 막상 왜 달려야 하는지 설명하려 하면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 "유산소 운동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데!..." 체력 향상의 최정상에 있는 운동이 바로 달리기이며 마라톤이라고만 말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말 큰 도움이 되서 추천해주고 싶은데 뭘 얘기하면 좋을까?고민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전문가, 유명인, 권위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 먼저 경험하고 성취해낸 길이 그 말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뇌를 치료하는 의사이자, 마라톤 매니아인 의사가 쓴 '길위의 뇌'는 "달리기가 정말 건강에 좋을까?"하고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해줄 수 있는 책이다.


-글로 나아가는 이




▲편리함이라는 독, 달리기라는 처방


"우리는 손쉽고 편한 것만 찾는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왠만한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지갑을 일사천리로 열게 만드는 방법을 탐색하고 또 탐색한다. 현대인들은 기업이 만들어 둔 편리함의 덫과 편리한 것이 가장 혁신적이라는 세뇌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일사천리 서비스의 맛을 본 현대인들은 편하지 않고 오래 걸리는 일을 점점 더 못 견딘다.


이미 수십년을 지내온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기만 하고 좋아지는 것도 모르겠으니 며칠 해 보고는 금방 접어버린다. 그리고는 또 다시 손쉬운 방법은 없는지 다시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 없이 다른 수단만으로는 절대 건강해질 수 없다. 내가 내 몸을 사용하는 잘못된 패턴, 나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다픈 몸은 다시 건강해질 수 없다. 건강하려면 노력이 필수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정세희 교수, '길 위의 뇌' 中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정세희 교수. 정세희 교수 제공


쉽고 편한 길, 나 또한 반성이 된다. 아니,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세대가 편함에 길들여졌다. 그 핵심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극도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로, 지구의 수많은 생태계는 파괴됐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인간이다. 인간이 얻는 모든 것은 자연에서 오기 때문이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호흡과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가 바로 걷기와 달리기다. 그래서 달리기는 인간이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몇 안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가 아닌 오직 자기의 의지와 힘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행위. 달리는 행위 자체만으로 인간은 살아있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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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내 몸을 정말 편하게 사용하고 싶다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든 달리기를 지금은 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우리에게 무한정 기회를 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변치 않는 세상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진짜 건강은 '뇌 건강'에서 온다, 그러니 달려라


"거친 숨을 헉헉거리며 내달릴 때에는 마치 펑펑 울 떄와 비슷한 기분이 된다. 후련하기도 개운하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가슴에 담아둔 심정을 토로하지도 않았으며 진짜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니지만, 내달리면서 마음은 이미 꽤 풀리고 있음을 달리는 사람은 안다. 단순한 몸짓의 반복에서 감정은 정제되고 감수성은 다듬어진다."


"뇌를 위해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을 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산소운동이 심장과 폐만 강하게 만들까? 그렇지 않다. 심장과 폐는 물론 동맥과 정맥, 말초혈관, 근육, 근육내대사 시스템까지도 건강하게 만든다. 운도을 그저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한 혹은 살을 빼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특히 운동, 유산소운동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조직-즉, 운동에 관여하지 않는 조직-을 변화시킨다."


"기억과 망각, 간직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우리는 대부분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기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망각이라는 것, 망각할 수 있어야 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특히 달리기는 망각 과정을 도와 부정적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게 해준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정세희 교수, '길 위의 뇌' 中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에서 열린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정세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정세희 교수 제공


달리기의 이점이 이렇게 많은데도, 뛰지 않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우리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동물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물론, 최근 달리기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하는 건 좋은 지표다. 하지만 아직도 내 주변엔 달리기를 말하면 손사레부터 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나는 혀를 쯧쯧 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떡하면 달리기에 매료될 수 있을지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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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때는 삶의 무게가 덜어진다. 달릴수록 내 몸과 근육은 과부하가 걸려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머릿속은 점점 가벼워 진다. 10년을 달리며 단언할 수 있는 하나는,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에 크게 얽매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글로 나아가는 이




▲내일부터 건강해지는 법은 없다. 명심하라


"우리는 오늘 계획한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내일의 내가 할 거야'라고 말한다. 내일의 나에게 기대지 말고, 오늘의 내가 해주자. 오늘 내가 한 운동은 내일, 10년 후, 30년 후의 나를 위해 쓰일 것이다. 내 몸과 혼에 새겨진 평소 습관이 위기에 처한 미래의 나를 도울 것이다. 다치기 전 아프기 전에 해 둔 운동이 회복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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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해서 병을 얻지 말라는 법도 단연히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출근 전에도 또 어제도 달렸다. 오늘의 달리기는 나이든 내가 병에 걸렸을 때 쓸 약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의 운동 덕분에 병이 하루라도 늦게 찾아온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운동은 미래에 당신을 치료해 줄 약이다. 쓸 약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기를 권한다. 하루라도 일찍."


"병을 계기로 삶과 건강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 환자들은 병이 의미 없는 고통이었다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가치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병은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우리는 꽃길이 아닌 길을 더 많이 걸을 것이다. 어차피 거친 길에서 만날 운명의 화살과 물맷돌들. 그게 나쁜 스트레스일지 좋은 스트레스일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꽃길이 깔리기를 바라지 말고 몸과 마음의 힘을 만들어 보자."

-재활의학과 전문의 장세희 교수, '길 위의 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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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죽음 앞에서 당당한 인간은 결코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병마는 대부분 자신의 관리부족과 부주의에서 오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러니 달리자. 날씨가 추워서, 시간이 없어서, 내일부터, 핑계는 그만, 평생 핑계만 되다가 삶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


-글로 나아가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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