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하조대 해변
봄이 흐르고 있다. 변덕이 심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내일은 오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4월 한 달은 정신없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이사에 결혼 준비, 그리고 회사 내부의 사법적 이슈까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맞닥뜨린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 믿으며 담담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아니, 어쩌면 '해결'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지도 모른다. 결국 흐르고 지나가리라는 말이 더 맞는지도..
담담함을 되찾기 위해 지난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강원도 양양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훗날 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담백하게 남겨 놓으려 한다.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영동 지방의 빼어난 절경을 뜻하는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671년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 복원과 화재를 반복하여 겪었다.
양양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들른 낙산사. '부처님 오신 날'의 대체공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런지 사찰을 오르는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몇 달 만에 보는 탁 트인 바다인지, 가슴이 트이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국내 여행을 갈 때마다 절에 들르게 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깊은 자연 속에 자리한 사찰이 주는 평화로움이 있다.
낙산사 초입에 있는 기암절벽의 소나무 언저리에는 회색 부엉이가 살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부엉이 녀석을 보기 위해 하나같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주민이 설명을 들으며 살펴보니 확실히 기이한 생명체임이 분명했다.
낙산사를 거닐다 발견한 한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요약하면 "원효대사가 낙산사에서 흰옷 입은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이 벼가 익지 않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여인은 물을 청한 원효대사에게 빨래를 빨던 더러운 물을 떠주었다"는 내용이다.
뭔가 깨달음을 주기 위한 비유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듯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 비석에 왠지 모르게 눈이 갔다.
낙산대에서 차로 20분. 하조대 해수욕장 앞 카페 '더 스탠드'에 들렀다. 아직 쌀쌀한 봄날이라 서핑을 즐기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바다는 눈과 귀로 맞이하기에 딱이었다. 동해의 깊고 우람한 매력은 닳지 않는다. 아야진과 속초, 경주에 이어 양양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선사해 줬다.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다는 말에, 늦은 저녁 근처 해변 일대를 찾다가 간 피자집 '싱글핀에일윅스'. 생각보다 정말 맛있었던 초당옥수수튀김과 시카고 피자.
배를 채운 뒤 밖을 나섰다. 해변가를 따라 흐르던 회색의 구름 뭉치와 진청색의 하늘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