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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여행] 왜 동양의 나폴리라 하는지 알겠어.

충무공의 결의, 어촌의 낭만이 있는 그곳, 통영이라는 섬의 나라

by 글로 나아가는 이

어쩌면 이번 여행기가 이직 전 나의 마지막 에세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행 작가'라는 삶을 꿈꾸고 있기에 여행을 다녀오면 틈틈이 글을 쓴다. 의식의 흐름과 감정이 몰입하는 순간을 따라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어디를 가면 쓸거리가 없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때론 무언가 쓸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여행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업과 성향상 계속 뭔가를 쓰고 싶기에 '생활 속 발견'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습관이다.




몇 년 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다. 바로 경남 통영이다. 통영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군 복무 시절, 내무반에서 한 드라마를 보고서 처음 들었다. 빠담빠담이라는 드라마였는데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어촌 동네가 낭만적이었는데 알고 보니 촬영지가 통영이었다. 푸른 바다와 부두를 중심으로 어우러진 어촌 마을 그리고 수많은 섬들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경남 통영의 풍경, JTBC 드라마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 빠담빠담' 中




나지막한 어촌 도시, 통영의 매력을 알려면


통영은 조용한 어촌 도시가 맞다. 저녁 언저리에 도착한 그곳을 서울과 같다고 착각한 것이 실수였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음에도 마땅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해안과 부둣가를 돌고 돌아 겨우 발견한 곳은 바로 충무김밥집. 별 기대 없이 허기진 채로 들어가 맛본 김밥의 맛은 여름의 별미였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인가. 배를 조금 채우고 나서야 통영의 아기자기한 야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통영시에서는 통영을 야간관광도시로 홍보하고 있었다. 보통 야경과 밤의 관광은 번화가가 밀집한 큰 도시에서 강조하는데, 어촌 도시에서 야간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이 새로웠다. 차를 타고 곳곳을 돌다 보니 통영대교와 부둣가 이곳저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간관광도시에 맞게 새롭게 도시를 리모델링하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이방인이지만 통영이 다시 살아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 시내, 어촌마을의 모습, 충무김밥 식당과 야경


통영의 가장 큰 매력은 어디를 가든 넓은 바다와 섬들, 그리고 어촌 도시의 낭만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덕과 골목 어디를 올라가든 그곳이 정상이 된다. 평일이라 왁자지껄한 느낌은 덜했지만, 주말에는 관광객이 더 많아 더욱 활기찬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통영의 별미는 바로 꿀빵이다. 시내 어디를 돌아다녀도 곳곳에서 '00 꿀방' 간판을 단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꿀방은 팥이 든 고소하고 쫀득한 빵으로 겉에는 참깨와 꿀이 발라져 있다. 허기가 질 때 간식거리로 먹기에 참 좋다. 이에 잘 잘 낀다는 점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또, 통영은 충무김밥으로 유명한데 충무김밥은 모두가 가난했던 1950년대 당시 부둣가에서 어떤 아낙네가 돈을 벌기 위해 김밥을 만들어 팔았던 것이 유래라고 한다. 여기저기 원조라는 얘기가 많아 정확히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심플한 김밥과 오징어무침, 총각김치 등과 함께 곁들여 먹는 통영의 대표 먹거리 중 하나다.




섬의 낭만과 충무공의 결의가 있는 통영


통영은 약 570개의 섬으로 이뤄진 해안 도시로 한려수도 뱃길을 따라 이뤄진 풍경이 장관이다. 그래서 통영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섬 곳곳을 탐험해야 한다. 배와 요트를 타고 갈 수 있는 섬 여행이 일품이다.


한 가지 의외의 특성은 해안 도시임에도 공식적으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해수욕장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육지에 위치한 수륙해수욕장과 비진도 등 각 섬에 위치한 해수욕장이 있다. 그래서 통영에서의 해수욕을 꿈꾸고 있다면, 어디로 갈지 미리 체크해야만 한다. 섬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에서도 사방으로 펼쳐진 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봐왔던 수평선이 이어진 바다와 달리, 누군가 살고 있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섬의 정취는 또 다르다.


통영 내륙에 위치한 수륙해수욕장의 전경, 해수욕장의 공식 오픈은 7월 2일경이라고 한다.




통영의 절경을 또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미륵산이다. 미륵산은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분출된 화산으로, 미륵존불이 장차 강림할 곳이라고 하여 명명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하지만 미륵이 언젠가 내려올 산이라 그런지, 방문했을 때는 산 봉우리를 온통 안개가 가득 안고 있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선한 물기를 가득 먹은 편백나무의 짙은 향기가 나의 후각을 위로했고 그 나름대로의 운치를 즐길 수 있었다.


이른 오후임에도 가득한 안개를 보고 생각했다. 역시 자연은 인간이 보고 싶은 풍경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자연이고, 그것이 우리 삶을 보여준다는 것을. 거대한 솜사탕처럼 펼쳐진 안개를 보며 자연처럼 변화무쌍한 삶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했다.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미륵산의 전경. 당일에는 안개가 가득했다.




통영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인사는 바로 대한민국의 자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만 뵐 수 있었던 그분을 한산도 전투의 현장인 통영 앞바다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이순신 장군은 일본 해군과의 해상 전투에서 32전 32승으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실제 수많은 일본군과의 해상 전투가 벌어졌던 그곳을 바라보니 그때의 전투는 얼마나 치열하고 정교했을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말로만 들으면 '우와 대단하다. 그렇구나' 하고 말수도 있지만, 조국을 위해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전략을 세우고 전투에 임했던 그의 마음과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순신 공원은 통영에서 가장 넓고 멋지게 조성돼 있는 산책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통영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통영에 방문하면 꼭 가보길 추천한다.


통영 이순신 공원 앞 풍경. 한산도 대첩이 이뤄졌던 그 바다 전경.


통영 여행의 마지막은 낭만의 끝이었다. 요트 여행하면 호화로운 부자들이나 즐기는 여가라고 생각해 왔지만 통영에서 크지 않은 금액(1인 35,000원)에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하게 돼 기뻤다.

멋진 요트를 타고 내륙을 나서자 우람한 체격의 갈매기들이 하나 둘 날아들기 시작했다. 먹이를 줄지 알았는지 갈매기들은 날개를 쭉 펼친 채 바람을 가르며 다가왔고 던져주는 새우깡을 잽싸게 낚아챘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스피커가 들려주는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섬들이 추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중간에 나얼의 '바람기억'이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그 제목처럼 통영의 바람이 기억 속에 스며들었다. 섬과 섬 사이로 부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멀지 않은 외딴섬에서 누군가의 염원으로 불어오는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폭죽의 향연. 서울에서만 보던 거대한 불꽃놀이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섬과 바다, 어촌 마을이 아기자기한 섬광 속에서 고요하게 빛났다. 자연 속에서 부서지는 불꽃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영원히 살아야 할 동네를 고른다면, 이런 곳이면 참 좋겠다고.


https://youtube.com/shorts/ZoOpv7rONy4?feature=share


통영 '오션브리즈' 요트투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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