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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면, 보이는 것을 유지할 수 없다

가우르 고팔다스의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을 읽고

by 글로 나아가는 이

우리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방법은 터득했지만

스스로 성공했다고 느끼도록 삶을 꾸려 나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보이는 것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가우르 고팔다스,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 中에서




단순히 보여주기를 넘어, 화려함을 과시하는 문화에 노출된 우리들에게 위와 같은 교훈이 과연 들리기나 할까. 보이는 게 곧 돈과 명예로 연결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고서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람도 보이지 않는 속(내장)이 건강해야 정말 오래오래 건강할 수 있고, 건물도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철근과 기둥 등 내진 설계가 잘 되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ChatGPT Image 2025년 9월 14일 오전 12_02_51.png AI 생성


보이는 것에만 집념할 수 있게 만든 편안한 세상, 그중에서도 모든 시스템이 아주 빠르게 잘 돌아가는 나라에 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일단 빠른 시스템과 클릭 한 번에 이뤄지는 모든 것들은 사고하고 묵상하는 우리를 빼앗아갔다. 가게에 가서도 지폐와 동전을 새며 나에게 얼마가 있는지 생각하고 계산했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바코드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짧디 짧은 순간에 사람 간 대화나 인사는커녕, 서로를 향한 일말의 호기심조차 허용되기란 쉽지 않다.


현저히 줄어든 대화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스몰토킹(가벼운 일상 대화'는 목적과 어떤 자리를 위해 짜인 레퍼토리 안에서나 존재하지, 사람과 사람 간에 자유롭게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스마트폰과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 매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서로 에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지조차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다. 어색함이 깃든 순간 곧바로 화면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렇게 대단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화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회피인 셈이다.


더군다나 릴스(Reels), 쇼츠(short)라고 불리는 짧은 형태의 영상 콘텐츠는 그런 사람들의 회피형 콘텐츠 소비 습관을 더욱 부추겼다. 끝없이 영상이 펼쳐지지만, 수백 개를 보고 나서 마음에 남는 건 극히 일부일 뿐, 그마저도 자극과 감정만 남고 사고 속에 깊이 뿌리내리진 못한다. 결국 사고의 종말로 가고 있는 것이다.


AI 생성


시청자들이 보기에 재밌는 영상, 고객이 보기에 빠르고 편리한 기술, 친구들이 보기에 예쁜 얼굴, 다른 나라가 보기에 편리하고 좋은 시스템, 누군가 보기에, 또 보기에. 온통 누군가에 게 '보여주기'에만 바쁜 삶. 보여주지 않고 그저 스스로 깊게 뿌리내린 것이 있기나 할까.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보고 믿으며, 또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도 만족할 수도 없다. 결코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남이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에서 조금 떠나, 보이진 않지만 나를 채워주는 것들에 시간과 마음을 쏟을 필요가 있다.




지식을 갈구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 번째 특성은 '그리하티야기'이다. '그리하'는 집을 뜻하고, '티야기'는 포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인도에서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구루쿨이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교사나 구루 밑에서 공부했다. 그리하티야기는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의 그리하티야기는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지대를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익숙한 상황이나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다. 안락한 지대에 살고 있으면,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그리하티야기는 우리의 안락한 영역에서 나오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바로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 中, 가우르 고팔다스




가우르 고팔다스가 말한 지식을 갈구하는 자가 곧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행과 고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앞서 말한 편리함을 떠나 불편하고 힘든 곳으로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모든 것이 편리해진 세상에서, 우리의 정신이 자꾸 더 병들어 가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ChatGPT Image 2025년 9월 14일 오전 12_15_32.png AI 생성


결국 진정한 지식과 지혜는 편하고 쉽게 얻어지지 않으며,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얻을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지식과 지혜의 수준은 점차 쇠퇴하고, 극히 소수의 지식인과 전문가들 그리고 초거대 인공지능(AI)이 대다수의 지식을 독식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중은 모두 노력해 지식 얻기를 포기하고, 클릭한 번에 해결되는 극도의 편리한 삶만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환경은 잔인하다시피 편리하다. 인간의 존재를 부정해도 될 만큼.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무언가에 대체될 수 있을 듯이 말이다. 그러니 의식해서 자신을 고통 속에 넣고 단련하지 않으면, 언젠가 밀려나 버릴지도 모른다. 이건 나 자신을 향한 나의 섣부른 경고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대자연에 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 젊은 농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어떨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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