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악단'을 보고
죽음도 막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그건 바로 우리 가슴 안에 꿈틀거리는 '인간(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최근 충무로의 이변으로 떠오른 저예산 국립영화 '신의 악단'을 보고 나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국 영화가 한동안 긴 침체기를 겪고 있음에도, 뭔가 어색한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어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의 소재가 일반 대중에게는 거부감을 줄 수 있는 특정 종교(기독교)와 북한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누구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휴머니즘'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시대는 그 어떤 때보다 문명과 기술이 발달한 시대이지만, 정서와 의식 측면에서는 결코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초개인주의, 각자도생, 인공지능(AI)과 기술 패권주의, 능력 지상주의에 지친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일 테니까.
표현과 신앙의 자유, 일말의 인권조차 허락되지 않는 독재 권력 하에서 살아가는 이북의 신앙인들에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과 분단된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제 먹고살만한 우리가 굳이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그래도 결코 잃지 않아야 할 마음이 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기독교의 성경은 무려 2000년 전부터 이 휴머니즘을 얘기하고 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려 했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그 의미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어떤 시대와 체제 속에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그 가르침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바로 '사랑'이다.
영화는 그 사랑을 억지로 설파하지 않는다. 찬양이라는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누구라도 저 상황에서 저렇게 느낄 수 있겠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애정과 불쌍함(기독교에서 말하는 긍휼함)을 느낄 수 있는 가슴만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말이다. 특히 '은혜'와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의 가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근래에 들어 세계에서는 전쟁과 테러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전쟁의 역사로 수많은 걸 누려왔지만, 이젠 한계에 와 있다고 본다. 이 땅에도 이젠 평화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가르쳤던 그 평화 말이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한 그의 오묘한 가르침을 말이다. 언젠가 그가 말한 사랑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 올까 싶기도 하다. 그때엔 저 군사분계선 너머의 동무들에게도 영원한 자유가 올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바라는 평화가 올 수 있을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기독교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4~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