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그건 행복하다는 얘기

글로 나아가는 이

by 글로

몰입하고 싶은 세계가 있다. 일상을 살다가 도저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을 때, 정서적 황홀감이란 걸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때,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다. 그곳은 네모난 영상 속 세계일 수도 있고, 한 손으로 들기엔 조금 무겁지만 펼쳐 들면 은은한 나무향이 나는 에세이집일 수도 있다. 늘 네온사인에 노출된 채 살아온 디지털 세대에게 이런 몰입의 순간은 꽤나 소중하다. 오래된 하수도에 가득 물 떼가 끼어 있듯, 늘 뇌에 잔상이라는 떼를 끼고 사는 우리들이기에.


이 세대에 태어난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한다. 알고 싶을 때 알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우리는, 어쩌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지 않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걸 보고 자라왔기에.


일회성 자극만 가득한 현실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에 몰입하게 하는 몇몇 순간이 있다. 대다수는 원시적인 활동이다. 잘 생각해 보면, 새로운 자극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루함 그 자체다. 하지만 새로운 자극을 내려놓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불안의 고뇌는 사라지고, 비교적 편안한 고통과 숨소리만 남는다. 나는 그게

걸 축복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잘 먹고 잘 살거나,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뛰어난 성과를 내거나, 이런 현실의 굴레로부터 뇌를 해방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이기에.

그런 면에서, 독서는 현대인들에게 마라톤만큼이나 힘든 활동이 되어 버렸다. 시작부터 몰입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몰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집중해야 한다.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스마트폰의 알림이 울리거나, 바람이 책장을 스치는 자극을 견뎌야 한다. 책장을 덮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은 욕구를 넘겨야 한다. 이는 마라톤에서 걷거나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은 욕구와 비슷하다. 문제는 그런 우리의 습관이 감정과 언어, 태도로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을 굳이 수용하거나 견디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감정의 결을 타고 다듬어지는 언어에도 흠이 생기거나 가시가 돋친다. 우리의 말은 지나치게 날카롭거나 뭉툭하다. 감정과 언어를 충분히 견디지 않은 이의 태도는 무례하다. 무례한 사람의 언어는 결국 다시 위험한 감정을 양산해 낼 뿐이다.


몰입하고 싶은 세계. 그 안에서의 당신이 견뎌온 감정과 언어, 태도가 결국 당신의 행복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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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만능의 시대
사고의 맛을 느끼고 싶은 2030을 위한 독서&글쓰기

독서하고 사유하고 대화합니다.
자신만의 온라인 공간에 흔적을 남깁니다.

*모임장 이력
현직 기자로 일하고 있음
브런치 작가 '글로' 운영
네이버 블로그 운영 '글로의 감성책방'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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