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Nov 04. 2018

한창훈 , '순정'을 읽고

우리의 순정은 어디로 가 버린걸까?

얼마 전 연희동에 위치한 연희문학창작촌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한창훈'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다.


문학창작촌에서의 기억 덕분이었는지, 재밌는 소설이 읽고 싶어 마포학습도서관으로 갔다. 책을 찾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글자가 있었다. '한창훈', 그리고 왠지 어색히 다가온 두 글자 '순정', 원래는 다른 책을 빌리려 했었다.   

순정, 한창훈


"그 섬에 가서 그녀를 만나고 싶다."

새하얀 표지엔 한 소녀가 바닷가를 뛰고 있었다.

왠지 슬플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선뜻 책장을 펼 수 없었다.  


'순정이라... 이 시대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더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안에 어딘가 숨어있던 순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일단 빌렸다. 책을 통해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는 건 꾀나 즐거운 일이니까. '순정'이라... 문득 궁금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책을 읽어내려가는동안 나는 마치 섬동네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순박한 17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투리가 들려왔다. 한창훈 작가의 어린 생애가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제목이 '순정'인 것은, 아마 극 중 인물인 범실과 수옥의 첫사랑 이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 두 사람의 순정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영화, 순정 中에서
순정, 우리가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이 낱말에는 누구나 한 번쯤 새싹을 바라보며 꽃이 피기를 기도했던 순백의 첫사랑이 있다.
<이창훈 소설, '순정' 中에서>



아무 댓가 없이 누군갈 좋아하고 그 사람의 눈빛만 봐도 가슴이 떨려오고, 그 사람에게 내 모든 걸 줄 수 있었던, 그래서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던,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금방 시작된 사랑은 금방 식어.”
교사는 조용히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기타줄 소리가 햇살 화사한 교실에 울려퍼진다.
“난 이십 년은 가다려야 사랑이 완성된다고 봐.”
“이십년......”
“사랑도 살아있는 생명체야.”
“그런 거 같아요.”
“우리 마음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는데 그만큼 오래 걸리지.”
<p70>


극중 수옥의 첫사랑인 기타 선생과 수옥의 대화이다. 어쩌면 그의 말 때문에 수옥은 첫사랑의 순정을 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순정'은, 바보 같지만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른다. 그리고 구태여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좋아한다. 그리고 상처가 크다면 그 크기 그대로 그 받아들인다. 그 뿐이다.


그날 그 자리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꺼낸 그녀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가련했습니다만, 바라보던 제 마음도 똑같았습니다. 바위로 변하더라도 함께 있고 싶은 것. 그랬습니다. 바위뿐이겠습니까. 그녀와 함께라면 바위도 좋고 풀이 되어도 좋고 바람이 되어도 좋았습니다. <이창훈 소설, '순정' 中에서>


그녀와 함께라면, 바위가 되어도 좋다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나에게도 그런 순정이 아직 남아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챗GPT와 인류의 미래를 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