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 中, 알베르 카뮈
첫 문장부터 강렬하고 파격적이었던 이방인. 이 소설이 왜 불멸의 명작이 됐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왠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뫼르소는 제 삶에도 타인에게도 부조리한 세상에도, 그 누구에게도 모두 이방인 같은 태도를 취한다. 날카로운 듯 건조한 카뮈의 문체가 그를 말해준다. 어쩌면 뫼르소가 곧 카뮈였을지도 모른다. 뫼르소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그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뿐이다. 뫼르소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히 흘러간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삶의 큰 자극과 사건들을 뫼르소 같은 시선으로 전부 건조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순 없을까.
모든 게 잘돼야 하고, 의욕이 있어야 하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고? 물론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지만 잘 모르겠다. 조금 지쳐서 그런지도 모른다.
열심히 꾸준히만 해왔던 내 삶에서 조금은 탈피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매번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때론 한 발짝 물러나 이방인으로서 삶을 바라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다.
뫼르소에게 깊이 이입한 부분이 있다. 뫼르소는 해변가에서 아랍인에게 총을 쏜 후, 이방인이 되어 수많은 타인들에 둘러싸여 실체 없는 심판을 받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무료함, 분노, 설움 등 과거의 상처로 인해 덧난 무언가에 이끌려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타인의 상처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저 그 일을 어떤 잣대로 바라보고 심판할지에만 혈안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래서 인간은 본질을 잃기 쉬워, 늘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분량은 짧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소설. 이방인이었다.
-글로 나아가는 이
네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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