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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07. 2018

피천득, '인연'을 읽고

수필의 정석

소년 같은 진솔한 마음과 꽃같이 순수한 마음과
성직자 같은 고결한 인품과 해 탈자 같은
청결한 무욕(無慾)의 수필'


피천득, 인연



책의 맨 뒤편에 적힌 글이다. 보통 책을 읽을 때, 맨 뒷면에 적힌 짧은 소개 문장을 가장 먼저 본다. 아마 나는 출판사가 가장 좋아하는 독자일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냐고? 나도 모른다. 그저 책을 읽을 때의 습관 하나를 털어놓았을 뿐이다.


'인연'이란 책을 처음 발견한 곳은 홍대에 위치한 경의선 책거리였다.

문학 서점의 선반 위, 하얀 책 한 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경의선 책거리 '서점 안'
경의선 책거리 '문화산책'



'피천득'이란 이름은 몇 번 들어봤다. 워낙 특이하고 유명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었다. 이상하게 천상병 시인과 헷갈렸다. 두 분의 성함이 전혀 연관성이 없고 특이했음에도.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 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피천득, '인연-서문' 中에서>



이 책은 오래전부터 작가가 썼던 글들을 모수필집이다. 아이 같으면서도 섬세한 작가의 정서가 돋보다.


꾸준히 글을 모아, 언젠가 작은 빛이라도 발하는 날이 내게도 오면 좋겠다. 뭐든 모아 태산이 면 얼마나 좋을까.


쌓이지 않는 통장 잔액과는 다르게, 돈이 되지 않는 무욕을 닮은 것들은 아주 잘 쌓여간다. 귓속에 붙어버린 귀지들, 주머니 속 수북이 쌓인 영수증, 화장실 바닥에 엉켜버린 털 뭉치, 이런 것들은 하나같이 쓸모가 없으나, 용모가 있다.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피천득, '인연 - 맛과 멋' 中에서>



맛과 멋의 차이는 뭘까. 의미를 보면, 맛은 멋의, 멋은 맛의 반대말이 아니다. 작가의 통찰력 있고 신선한 시각은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다.


수많은 맛에 매료되어 살아가는 시대, 풍요와 물질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삶의 멋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내가 가진 맛과 멋무엇일까.   


한편 한 편의 짧은 활자에는 작가의 깊은 시선과 정서가 담겨 다. 내가 감히 피천득 선생님의 글을 평할 순 없겠지만 내가 느낀 이 수필집의 매력은, '얽매이지 않음'에 다.


논리와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레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자연스러움.  


故 피천득 작가


네가 대학 다닐 때 어떤 밤늦도록 하디의 소설을 읽다가 내 방으로 와서 "수(sue)가 가엾다"라고 하였다. 네 눈에는 눈물이 어렸었다.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수와 같은 강한 여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너는 디킨스의 애그니스같이 온아하고 참을성 있는 푸른 나무와 같은 여성이 되기 바란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어 순조로운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외롭게 살며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네가 택해야 할 길인지 그것은 너 혼자서 결정할 문제다. 어떤 길이든 네가 가고 싶으면 그것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피천득, '인연-딸에게' 中에서>


피천득 작가가 딸 서영이에게 보낸 편지다. 이 글을 읽다 보니 요즘 많이 고민했던 결혼에 대한 고민도 어렴풋이 정리가 되었다. 언제나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 이 또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문득 어머니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대신 책임도 네가 져야 한다."


조금 매정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깊게 깨 말이다.


성숙한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자아를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성경에서 신이 인간에게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스스로 선택하 했던 것처럼.


요즘같이 바쁘고 정신없는 날에는 그냥 강물처럼 흘러가고 싶다. 논리 없이, 주제 없이, 단편과 단편의 삶을 이어 붙어 나가며.


물론 강물에도 바람에도 신의 논리가 담겨 있겠지만, 그들의 삶에는 사람의 머리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나도, 그런 삶을 따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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