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서' 고통스러우나,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면 그저 흘러가는 한 점과 같을 겁니다. 그것이 현실이라면 스스로 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사라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하고, 우리 앞에 놓인 빈 공간을 채워갈 뿐입니다.
<'라틴어 수업' 본문 中에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별의 계절, 우리는 어떤 삶을, 얼마나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디쯤 와 있을까.
작년부터 작은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모임을 하며 느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스토리들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다는 것을.
같이 모임을 운영하는 민희가 '라틴어 수업' 이란 책을 추천해줬다. 제목만 봐선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았다. 라틴어라....... 생소했다.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 표지가 참 예뻤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참 멋졌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걸까? 궁금함에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오랜 세월 공부하는 일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학문의 근간이 되는 일이 늘 우선이었기에 이런 글을 늘 관심 밖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낯설고 어색합니다.
<p7>
라틴어 수업을 쓴 한동일 작가는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다. 출판사의 추천을 받아, 대학교에서 했던 수업을 책으로 옮겼다. 그의 글에는 부드러운 힘이 있었다.
푸근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어떤 재판관도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의 라틴어 수업은 어떨까?
토익, 중국어 수업은 많이 들어봤는데... 라틴어 수업?
오늘날 수많은 토익, 토플학원은 취업을 위한 점수를 따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직 취업과 점수를 위해, 그 언어를 왜 습득하는지조차, 언어에 담긴 의미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단어를 외운다. 그런 우리 사회에 한동일 작가가 던진 문장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언어는 공부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언어의 습득적, 역사적 성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는 언어의 목적 때문입니다. 언어는 그 자체의 학습이 목적이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서의 목적이 강합니다. 앞의 강의에서 말했듯이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는 틀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점을 자꾸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네카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언어 학습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외국어 영역의 지문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외국인들조차 그 지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고, 수험생들은 한국어로 해석된 것을 읽어도 헷갈려 합니다. 10년 가까이 해온 외국어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한 것이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p55>
많이 공감했다. 라틴어 수업 당시, 많은 학생이 수강신청을 했고 강의실은 대부분 만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취업과 진학을 위해 라틴어는 필요하지 않은데?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 수업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걸까. 앞서 말했던 작가의 생각대로라면, 단순히 언어 공부를 위한 수업은 아닐 것 같았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바로 라틴어의 성적 구분이었다. 물론 '라틴어 수업'의 성적구분은 학교규정에 따라 A,B,C 등으로 나눠질 수 밖에 없었겠지만, 수업에서 가르쳐 준 라틴어의 성적 구분은 달랐다.
Summa cum lande 숨마 쿰 라우데 (최우등)
Magna cum lande 마냐/마그나 쿰 라우데 (우수)
Cum lande 쿰 라우데 (우등)
Bene 베네 (좋음/잘했음)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스펙트럼 위에서라면 학생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p74>
문득 어릴 적 학습지 선생님이 숙제를 완료하면 찍어주신 도장이 생각났다. 도장의 종류는 단 2가지 밖에 없었다. 참 잘했어요, 잘했어요, 어떤 도장을 받아도 힘이 났다.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용기가 샘솟았다. 아주 오랜 일이다. 수많은 평가와 경쟁 속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던 게 언제일까.
이 밖에도 작가는 라틴어 속에 숨어있는 삶의 지혜를 통해 우리 사회를 굽어본다. 언어를 소통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깨달음의 원천으로 바라본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에게 이른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라고 했다. 말이 통하고, 말을 통해 삶의 가치가 깨달아진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인가.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Dilige et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우리는 모두 생을 시작하면서 삶이라는 주사위가 던져집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세요. 돌이켜보면 시간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할 겁니다. 신에게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남은 시간은 얼마만큼이냐고요. 하지만 신은 침묵으로 답하겠죠. 누구도 자기 생의 남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또박또박 살아갈밖에요.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p267>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했다. 지금껏 내가 시를 쓴 것도, 사랑을 한 것도, 신을 믿는 이유도, 어쩌면 모두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찾아 나서야 한다. 진정한,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