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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r 26. 2019

저우바오쑹의 '어린왕자의 눈'을 읽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어린 왕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잘 짜인 철학적 우화이다. 그 안에는 현대 사회에 대한 생택쥐베리의 깊은 반성과 인류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다. 나는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어린 왕자'에 담긴 생각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왜 '어린 왕자'를 이야기하는가? 그건 바로 세상이 암울하고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낄수록 꿈과 신념, 그리고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우바오쑹. '맺는말' 中에서>




어린왕자의 눈


어린왕자




너무도 익숙하고 귀엽다. 초록 옷에 빨간 망토를 걸친 노란 머리 소년,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만나보았을 이야기, 약 100년이 흐른 지금도, 어린왕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가슴을 뒤흔든다. 


어린왕자에 대한 수많은 해설이 있지만, 정치철학자 '저우바오쑹'은 정치철학자의 시각에서 어린왕자를 살펴본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해서 쓴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혹시 '어린왕자'를 좋아하지 않거나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마음을 열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본문 中에서, 저우바오쑹> 





내게 '어린왕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동심'이다. '동심'하면 초심이 떠오른다. 불교의 '법성게'에는 '초발심시변정각'이란 말이 있다. 이는 '처음 발심한 그때가 바로 정각을 이룬 때'라는 의미다. 첫마음, 첫사랑이 가장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때라는 뜻이다.  


오랜 기간 같은 일을 하거나 긴 연애를 한 사람들은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마음이 '처음' 같지가 않다는 뜻이다. 시작했을 때의 순수함과 열정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느낌, 쉽게 돌아가지 않는 마음, 그래서 모두가 초심을 그리워한다. 


초심이 가장 깊고 아름답다면, 모든 첫사랑은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짧고 연약한 걸까?

<p50> 



작가는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를 첫사랑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서로가 멀어진 이유를 '서투름' 때문이라고 말한다.



둘은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찾아온 사랑에 마음이 움직였고 온 마음을 쏟아부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가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린왕자와 장미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열정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자세다.

<p53> 


어린왕자와 장미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냈다. 




첫사랑에 서툰 이유는 멋진 사랑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학습이 필요하다. 상처받고 넘어지고 좌절하는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p53>



사랑하는 법? 사랑에도 방법이 있다고? 아마도 방법이 필요한 이유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면 서로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떤 걸까? 




어린왕자가 그의 책임을 포기했다면 이는 길들여짐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길들여짐을 포기하면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다.

<p138>


어린왕자 中



길들여짐은 책임을 지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담 책임감을 많이 느낄수록, 내가 그 대상에게 많이 길들여져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나와 그 대상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그럼 또 우린 무엇을 먼저 길들여야 할까?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잘 길들이는 사람이 타인과 인생의 사명을 잘 길들일 수 있다. 왜일까? 바로 '내'가 모든 관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에게 건강하고 충만한 사랑을 주기 못한다면, 외부 세계와도 좋은 관계를 맺기 힘들다.

<p88>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길들이지 못하면 아무것도 길들일 수 없다. 부정하고 싶지만 정말 맞는 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말도 있듯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만이 더 큰 존재도 다스릴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나를 알고 다스리는 것'으로부터 삶을 주도해간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체로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종속되어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느라 자신의 진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p153>



길들여짐은 깨달음일 뿐만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삶을 다해 길들이고자 하는 대상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해준다면, 상대 역시 신뢰와 사랑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살아있음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길들여짐의 대상은 배우자일 수도 있고, 친구나 가정, 사명일 수도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의 삶이 연계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p250>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왕자' 中에서>



어쩌면 여우가 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길들여짐'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길들여짐'속엔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 느낀 감정과 말들이 모두 들어있다. 그렇게 수많은 '길들여짐'을 통해 우린 사랑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관계 속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란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이 합쳐진 말이다.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냐'라고 말도 있듯, 사람이 인간이 되기 위해선 나란 사람 하나가 아니라 나와 너 둘 사이를 생각하고 고려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린 비로소 길들여지고,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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