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그 창의력은 인문학적인 소양에서 나오는 거고요. 인문학이라고 하니 무겁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생각해보세요. 100만 부가 넘게 팔렸잖습니까. 어쩌면 진짜 인문학적인 것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나의 전공은 광고홍보다. 광고계에 몸을 담거나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전공이라 그런지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최근에 다시 취업을 생각하며 다시 광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 4년이 내게 준 건, 다수의 연애 경험과 기획에 대한 이해 정도였다. 나는 열정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광고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광고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박웅현, 처음 그를 만난 건 책을 통해서였다. '책은 도끼다'라는 인문학 관련 책이었는데 그의 저서였다. 졸업때까지만 해도, 광고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합법적 거짓말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게 그는 새로운 시선과 통찰력을 가르쳐줬다.
광고라는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요.
<p33>
그의 광고는 인문학을 도구로, 소통을 목적으로 삼는다. 사람에게 알리고 사람에게 다가서야 하는 것이 광고다. 그런데 사람을 모르고,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광고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가 말하는 창의력은 단순히 톡톡 튀고 기발한 생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대중과 이야기한다.
연애편지를 쓴다고 해 봅시다. 편지 하나에는 '보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 손을 잡아주겠습니까? 광고를 만드는 창의력은 이런 겁니다. '보고 싶다는 말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에서 출발해서, 정지용의 이 시 같은 말을 찾아내는 겁니다.
<p32>
보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처럼 저렇게 가슴 아리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지용 시인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억대 연봉의 카피라이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학원, 독서실, 집, 하루 열다섯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서른일곱 권의 문제집을 풀었고, 스무 권의 연습장을 다 썼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상자에 넣어둔 책을 다시 책장에 꽂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수험생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p67>
한 편의 위로 같은 광고다.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문장, 그렇게 화려하지도 톡톡 튀지도 않는다. 박웅현의 광고는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무거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게 별거 아니라고 속삭이고 마음을 다독인다.
누군가의 삶에 한편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광고는 이미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이렇게 길게 서론을 끌고 온 것은 광고가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맨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광고는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영화감독의 철학이고 느낌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고는 그 사회의 시공간 속에 정확하게 낄 수 있는 문맥이어야 합니다. 그 문맥의 흐름을 잡아낸 광고라야 '소통'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p87>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게 어려운 이유는 현실성과 창의성을 함께 겸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또 표현이 너무 진부하면 안된다. 그래서 깊은 통찰력과 넓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저는 새로운 시선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p114>
박웅현의 광고들을 보며 한 단어가 생각났다. 그건 바로 '관심'이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 그것이 그가 가진 특별한 힘이다. 그리고 그 힘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박웅현은 꼭 윤리적이라거나 사회적으로 옳은 광고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기업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뿐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가치지향적인 광고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그가 '사람을 향하지 않는 기업은 성공할 수 없고' 기업들 역시 '더 좋은 가치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기업이 그것을 잊고 있다면 논쟁을 통해서라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광고주에 대한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집까지가 박웅현의 광고에서 발견되는 창의성을 만들어낸 요소다.
<p267>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 박웅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표현하고 소통한다. 그것이 시든 소설이든 광고든 영업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 가치를 사랑하고 믿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