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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r 29. 2019

'트렌드코리아 2019'를 읽고

소비자의 거대한 세포분열이 일어난다


소비자의 거대한 세포분열이 일어난다.


트렌드코리아 2019




트렌드, '추세'라는 뜻이다. 세상의 동향, 흘러가는 세월 속에 존재하는 유행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트렌드라 하면,  과정보단 한 시대를 풍미하는 순간의 힘을 의미하는 게 큰 것 같다. 나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유투브보단 시집을 좋아하고, 백화점에 진열된 옷들보단 구제 시장에 쌓인 옷들을 더 좋아한다. 구질구질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굳이 부정하거나 변명하진 않는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진정한 트렌드는 내가 진심으로 오래오래 아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영원한 트렌드라고.


이 책은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 내가 트렌드에 대한 호기심에 읽은 책이다. 좋았던 건 단순히 트렌드를 나열함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트렌드에 대해 일일이 의견를 달고, 그를 토대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다는 점이었다.


책의 헤드카피는 '소비자의 거대한 세포분열'이다. 사람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찾아 떠나 . '소확행'은 작년부터 유행했던 말이다. 우린 이제 가족, 조직, 집단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원한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도 충분히 자신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고, 언제든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공유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양면성이 더욱 짙어지는 건 아닐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관계엔 지치지만 외로운 건 싫다. 촌스러운 건 싫지만 지나친 유행을 따르는 것도 싫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지만 누군가와 공유는 하고 싶다. 갈팡질팡하는 마음들, 마치 거대한 집단 속에서 자란 아이가 자신만의 길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듯 두려움과 기대, 두 마음이 공존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이젠 스스로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장 공감했던 3가지의 트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요즘 옛날, 뉴트로




'요즘옛날'이란 말을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해석한다. 옛날의 아름다웠던 정서들을 가져와 오늘날의 실용적이고 빠른 기술에 접목시키는 것.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향수에 젖었던 3040세대에 이어 이젠 1020세대까지 '요즘옛날'로 떠나고 있다. 돌아간다는 말은 일부로 쓰지 않았다. 옛날이 아니라 '요즘옛날'이기 때문이다. 뉴트로는 'new''retro'의 합성어이다. '옛것을 요즘의 감성과 느낌으로 풀어낸 것'이다. 뉴트로는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레트로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지난날의 향수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를 모르는 1020 세대들에게 옛것에서 찾은 신선함으로 승부한다. 뉴트로 감성을 찾는 밀레니얼 세대는 모자람이 주는 충족감, 불완전함이 갖는 미학에 매력을 느끼며 보잘것없는 것에서 정신적 충족감을 얻는다.

<트렌드코리아 2019, p262>






 뉴트로는 과거라는 이름의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설렘이다. 그래서 과거의 무조건적인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미학적 감성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뉴트로는 단지 과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빌려 현재를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렌드코리아 2019, p262>




인간은 누구나 지난 추억을 그리워한다. '그때 그 시절'이란 멈춘 시간, 그 속엔 무엇이 있을까. 필자의 생각엔 잊고 살았던 '멋'이 아닐까 싶다. 아빠의 양복스타일을 입는 건 아버지께서 풍미했던 그 시절의 투박함과 호탕스러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고, LP판이 있는 술집에 가는 건 LP판만이 주는 깊고 웅장한 사운드와 아날로그틱한 감성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갈 순 없기에 현재에 맞춰 그때를 탐험한다. 아니, 그때가 아니다. 그때와 같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면에서 보면, '뉴트로' 트렌드는 결핍이 가져다준 새로운 재창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 감정 대리인, 내 마음을 부탁해





카카오톡이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일상화되고부터 직접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졌다. 전화나 대면보단 이모티콘 하나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익숙하다. 감정 대리인 콘텐츠가 많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양면을 보여준다. 첫째, 사람을 만나 감정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피로가 극도에 이르렀는 점,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나 화났다'라는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하고, 연애나 여행을 액자형 관찰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신 경험하며,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에 들어가 차오른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으로 감정을 외주 준다. 본능적이고 삶에 필수적인 감정 표현을 대리인에게 맞기는 것이다.

<트렌드코리아 2019, p291>


 

'감정'이란 참 어렵다. 오롯이 느끼기에도 그냥 묵살하기에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감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추악한 게 뭐냐고 물어도 대답은 같다.  


요즘 많은 매장에서는 사람 대신 '키오스크'를 세워둔다. 간편하게 주문만 하고 필요이상의 감정 소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키오스크'는 분명 효과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사람을 대신하는 '키오스크'와 같은 기계가 많아질수록 우리가 감정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는 말도 된다. 키오스크와는 인사(人事)도 할 수 없고 안부를 물을 수도 없다.


'감정소비'라는 말이 있다. 관계에서 감정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적잖은 피로감을 느낀다. 우리 인간에게는 기쁘고 행복한 감정도 있지만 슬프고 불안한 감정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슬프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힘들어하고, 그 감정들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덮어놓고 피한다고 해서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바로 찾아올까?






감정대리인에게 의존하는 소비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감정대리인에게 점차 의존하게 되는 것은 부정적이거나 슬프거나 불안정하거나, 뭔가 불편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마음 약한 근육에 원인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 늘 편안하고 안심되는 상태에 있을 수만은 없고, 또 그런 상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트렌드코리아 2019, p314>



기쁘고 행복한 감정도 중요하지만 삶이 더 풍부하고 가치 있으려면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해피밀이 지금 당장은 맛있지만 영양가는 떨어지듯, 감정의 해피밀도 우리의 마음 건강을 지켜줄지 자신할 수 없다. 감정관리에 대한 많은 책들이 말하는 바는 하나다. '자신의 감정과 마주 하라.' 무엇이든 공유하고 빌려 쓰는 시대라지만, 감정만큼은 즐거움이든 슬픔이든 자신만의 색으로 칠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렌드코리아 2019, p314>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그로 더불어 우리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마술이다. '감정'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건, 내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과 점점 멀어진다는 뜻이다. 필자는 요즘 느낀다. 외적으로만 크게 성장하기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가 이제 깊이 잠들어 있던 각 사람의 내면과 온전히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온 거라고.




3. 그곳만이 내 세상, 나나랜드  






우리, 우리, 우리, 우리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쓴다. '내 나라'보단 '우리나라', '내 가족'보다는 '우리 가족', '나의 영웅'보다는 '우리들의 영웅'까지. 한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집단주의를 내포하는 언어의 모습이다. 물론 집단주의를 비판하고자 이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집단주의 문화에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그래서 간직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는 건 인정한다. 다만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또 '우리'라고 했다. 계속 이어가자.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모습 중엔 '우리를 위한 우리'인 우리의 우리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작고 큰 움직임들이 보인다. 기성세대와 대중이 오랜 시간 향유했던 삶의 양식과 문화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나나랜드'가 펼쳐지고 있다.



남의 눈길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나만의 시간이 절대적이다. 한국 소비자는 타인 지향성이 강하다고 알려졌지만 이제 자기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의 강박에 시달렸던 여성들이 당당히 코르셋을 벗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의미 있다고 여겼던 삶에 반기를 들며 자기만의 무민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 나나랜드는 전년도(2018)의 '자존감' 키워드가 '자기 존재감'으로, 욜로가 '홀로(혼자 하는 욜로)'로 진화하고, 소확행 트렌드가 개별화한 것이다. 궁극의 자기애로 무장한 새로운 소비자들이 몰고 올 시장의 변화에 대비하라.   

<p393>



나나랜드는 단순히 기존 사회에 반기를 들기 위해 만든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가지고 있던 불합리한 편견과 기준에 맞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다른 누구의 만족보다 나의 만족을 우선시 하는 '순전한 자기애'에서 시작되었다. 사회가 세워놓은 '미의 기준'에 빗대어 늘 자신을 비판하고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은 치마, 메이크업, 긴 생머리 같은 코르셋들(과거 여성의 허리를 더 얇게 보이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허리를 조였던 장치)을 과감히 집어던졌다. 사회가 세워놓은 미의 기준에 굳이 나를 맞추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날씬하거나 탄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몸 긍정주의' 또한 인상적이다. 빅모델들이 주목받고 당당히 자신의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명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에게 영감을 준 동묘아재패션





필자는 이 변화가 한국 사회에 한 번쯤은 꼭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당당하기보단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보다는 그저 세상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전부인 양 믿어왔기 때문이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는 이들을 '무민 세대'라는 신조어로 표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다'라는 뜻을 지닌 무민 세대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무민 세대에게는 그 어떤 외부의 규범도 타인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삶이 나를 지키는 방식일 뿐이다.

<p409>




처음 이 문단을 보고 많은 20대 청년들이 정말 많이 지쳤구나 하고 느꼈다. 또 드는 생각은 '우린 얼마나 공감 받지 못하고 살아온 걸까?'였다. 보통 사람이 지치는 건, 소통이 되지 않고 일 방향적인 자극이 계속될 때가 그렇다. 많은 매체로부터 오는 출처 모를 정보들, 또한 가족, 지인,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는 즐비한 충고와 판단들, 바쁘고 바빠서 빠르게 가야 하기에 일단 길만 제시해야지, 당신의 마음 따위는 느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걸음의 시작은 발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점이다.


필자의 생각에 한국 사회의 '나나랜드'는 정착기를 위해 좀 더 오랜 투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정착의 과정에서 희생될 수 있는 모든 세대와의 대화와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각 사람들이 모두 합의적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나나랜드가 무사히 세워지기를 바란다.   




트렌드코리아2019를 읽고 독후감을 쓰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맞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책에서 말한 모든 내용이 이 나라에 살면서 한 번쯤은 목격하고 경험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트렌드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럼, 한 주도 잘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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