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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07. 2019

'힘'을 읽고

틱낫한


삶을 바꿀 수 있는 힘, 내 안에 있다.






지난 몇 주간 굉장히 바쁘게 살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있고, 지켜야 하는 품위도 있고, 봐야하는 영화도 있었다.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즐거워서 흥을 따르거나, 마음의 감동을 따르는 게 아니라, 머리가 말하는대로, 엑셀 시트에 숫자를  끼워넣 듯 모든 걸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러다 어느 날 핀트가 '픽'하고 뽑혀버릴 것만 같기도 한데, 지금 나는 괜찮은 걸까.



끝없이 성취하고 이뤄야 하는 삶 살아간다. 아침 8시 30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는 수천명의 인파가 몰린다. 이건 분명 흔한 광경이 아니다. 월드컵이나 축제가 열린 것도 아닌데,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는 뭘까? 나 또한 그 물결을 따라 걷지만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하고 말이다.  




'힘'은 틱낫한 스님의 깨어있는 마음, 즉 마인드풀니스 사상을 현대인에게 익숙한 '힘'이라는 키워드로 풀어쓴 책이다. 현대인들은 강력한 힘을 원한다. 하지만 부와 명예로 대표되는 '세상의 힘'은 우리의 삶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만들기보다 일과 시간에 쫓기는 노예로 만들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에 쫓겨 삶을 허비하느라 아이의 미소, 푸른 하늘 같은 눈앞의 기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 아닌 것들은 이제 그만 벗어버리자. 그리고 마음을 열고 내 안에 잠들어있는 '힘'을 깨우자.

-'힘' 中에서-


 '힘'을 내기 위해선 힘을 빼야한다는 말이 있다. 이전에 친구와 웨이크보드를 타러 간 적이 있다. 친구가 타는 걸 봤을 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타보니 쉽지 않았다. 가르쳐주는 코치님은 계속해서 몸에 힘을 빼라고 했지만, 나는 물에 빠질까봐 무서워 힘을 빼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의 실랑이 끝에 드디어 물위에 뜨게 됐다. 몸의 힘을 조금 빼고 적절히 배분했을 때 균형이 잡혀 보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쓸때도 힘을 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네 글엔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00야 조금만 힘을 빼 봐."


"꼭 잘 쓰지 않아도 돼. 글은 그냥 네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야. 글에 힘이 들어간다고 네가 진짜 힘 센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처음에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안다고 그러는 거지?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내 글을 자주 읽다보니 무슨 말인 지 알게 됐다. 잘 쓰기 위해 쓴 글은 읽는 나조차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로잡혀 있던 마음의 불안과 욕심을 내려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수행할 힘이 없을 때 불안은 찾아온다. 빨리 이 일을 해치워야지. 완벽하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마치고 나면 '완벽'보단 '억지'에 가까운 결과가 대부분이다.





일하는 사람은 늘 바쁘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바쁘다. 영어에서 일이나 사업을 말하는 비즈니스(business)와 바쁘고 분주함을 말하는 비지니스(busyness)가 철자 한 자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을 보면 꼭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혹, 자신의 내면에 자꾸만 생겨나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또는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들은 바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중압감, 압박감, 불안감은 공통점이 있다. 뭔가에 짓눌린다는 느낌이다. 몸이 무거운 물건에 짓눌려 있다면? 숨을 쉬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면 숨이 끊어지고나 기절하고 만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중압감, 압박감, 불안감에 계속 시달리다보면, 마음의 병이 오고 결국은 삶을 내려놓고 싶은 부정적 마음까지 유발한다. '숨통이 트인다'라는 표현이 있다. 엄중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거나, 불편한 사람과 있다가 벗어났을때 쓰는 표현이다. 땅에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햇볕이 비춰야 새싹이 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바람이 불고, 햇볕이 비추고, 물이 스며야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앞마당에 피어있는 꽃에 물을 줄 때도 온전히 현재에 존재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으로 호흡하라. 물을 주는 것 자체를 즐겨라. 당신이 주는 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꽃의 표정을 살피고 그것을 즐겨라. 이것이 바로 일상생활에서의 수행이다.

-p124-



요즘 욕망과 소망의 차이 속에서 끝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내 욕망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나는 왜 욕망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가?


남자들의 세계에서 예전부터 많이 들어 온 말이 '성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란 말이었다. 물론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성욕을 느낄 때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잦을 때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민이 든다. 내 욕망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할까? 그렇담, 이 욕망을 내가 스스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걸까?





소망과 욕망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소망은 자비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욕망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 다르다. 가끔 우리는 욕망을 숭고한 소망이나 이상으로 착각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좀더 평화로워지기 위해서 종종 욕망을 소망을 둔갑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분명 다르다. 자비심과 사랑에 근원을 둔 소망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욕망은 결국 삶을 지치게 한다.

-p125-


사람들은 내게 '정신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평소엔 그냥 내 성향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어느 날부터 나의 그 분주함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왜 정신이 없게 보일까. 들여다보니 문제는 지나친 생각과 욕구에 있었다. 심지어 마음으로 느끼는 것까지 많이 느끼려고 하다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늘 에너지만 방전이 됐다. 머릿속에 물건들이 막 어질러져 있는데, 발디딜 틈 하나 있었겠는가. 일도, 사랑도, 관계도, 자아계발도, 운동도 전부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버겁게 만들고 자주 '번아웃'의 상태로 몰고갔다.


그래서 요즘은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그래 오늘은 이거 하나 조금만 하고 자도 괜찮아. 분량보다, 형식보다, 진짜 느끼고 깨달은 게 중요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내게 마음의 여유를 준 것이다. 그러니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일이 아닌 것'들을 보살펴야 한다. 웃음, 숨쉬기, 휴식, 모두의 행복 같은 것들은 '일이 아닌 요소' 들이지만 일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때문에 이런 '일이 아닌 것'들을 돌보는 일은 중요하다.  

-p165-


정말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눈을 감고 내가 숨쉬고 있음을 느끼는 건 정말 소중하다. 살아있음을 느낄 때 진정 '나'라는 존재를 마주할 수 있다. 아팠던 마음과 억눌렸던 감정들까지도.


숨을 쉬어 보자. 하늘을 보고, 기지개를 펴고, 눈을 떴다가 감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자.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과 입 맞추듯, 고요한 물가에 나뭇잎 하나가 톡하고 떨어져 파장을 일으키 듯, 내 영혼이 살아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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