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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12. 2019

'나비'를 읽고

안도현  


나는 수업을 하다 말고
나비의 행방을 쫓아간
어린 날의 알리를 안다.
나비는 하늘거리는 날갯짓 때문에 아주 가볍고
순간적인 존재로 비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무게에 비해 나비보다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것도 없다.
아름다운 것을 따라갈 줄 아는 알리는
나비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비' 中


추석을 맞이해 외할머니댁에 왔다. 내게 명절은 반복된 일상을 떠나는 '작은 여행'과도 같다. 물론 내가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가족분들의 배려 덕분이다.


요즘은 명절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가족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고향이나 친척을 찾아뵙지 않는 이들이 많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가족구성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는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기에 쉽지가 않다.


당신의 가족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1년에 1~2번 겨우 볼 수 있다면, 그저 지지해주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주는 게 '현대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외할머니는 서울에 사시다 충북 단양으로 귀농하셨다. 이곳 단양은 산과 풀 내음이 가득한 동네다. 단양 8경의 기암절벽이 유명한 관광지기도 하다. 단양역에서도 약 1시간을 더 산골로 달리면  할머니집이 나온다. 가족들이 땅을 사 할머니를 위해 지은 집이다. 명절 때마다 오면 나는 늘 생각다.


"생각 좀 비우고, 자연과 그냥 자연스레 있다가 가자...! 편하고 솔직하게 가족들과 대화도 하고 말이야."


오늘은 시골과 잘 어울리는 최근에 읽은 '나비'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비는 작은 거인 '판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진즉 꺼내 놓아야 했다.
내 나이 열 사을 전후해서 저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났던,
참으로 사랑하던 김판수라는 내 친구 이야기 말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판수의 별명이 공교롭게도 알리였다는 사실 때문에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온 것 같기도 하다.
알리,
그 아이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어떤 꿈을 꾸는 게 삶에서 중요한 지,
마음먹은 꿈을 이루려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찍이 가르쳐준,
그 아이가 지금 이 말을 들으면 참으로  민망한 표정을 지을 테지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스승 같은 친구였다.

'나비' 中




누구에게나 '그런 친구'가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몰라도, 어릴 적 나의 멘토였던 '멋진 놈' 말이다. 나에게도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런 놈이 있었다. 그놈은 꾀 잘생긴 얼굴에 훈훈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체구가 작아 늘 괴롭힘의 타깃이 되기 쉬웠던 나를 지켜줬다. 그놈은 임원 선거 때 나를 반장으로 추천했다. 물론 반장이 되진 못했지만, 그때 그놈이 손을 들고 내 이름을 부른 후 지었던 미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
"알 속에 든 게 당연히 알이겠지 뭐. 삶아서 소금에 찍어 먹으면 된대."
내가 섣불리 말을 한 게 탈이었다. 그것은 알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알리는 마치 어른처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내 성의도 모르고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 알 속에는 백로 한 마리가 들어 있어."
"백로라고?"
"그래. 들판을 하얗게 날아다니는 백로 말이야. 예쁜 백로 한 마리가 이제 너 때문에 죽게 생겼네."
알리는 백로 알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알리의 짙은 눈썹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일이 영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나 때문에 백로가 죽는다는 말을 듣고 나도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왜 아무 상관이 없어? 백로가 죽으면 백로가 날아다니는 것도 보지 못하잖아."


남다른 감수성과 지나친 정의감을 가진 그놈, 극중 알리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는 백로 알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밤중 백로 둥지로 간다. 만약 나였다면 그렇게 했을까? 굳이 왜 그러냐고 묻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남다른 감수성은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한 집념'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이 '생명'과 연관이 깊다면 그 감성은 더욱 깊어진다. 주변에 소외당하고 아픈 존재를 위해 마음을 쓸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축복받은 감성이다.



"선생님, 오줌이 마려워요."
이곳저곳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은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략)
알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풍산교로 가는 강의 둔치에는 유채꽃밫이 끝없이 펄쳐져 있었는데,
알리가 그 밭둑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선생님이 "김판수!"하고 알리를 불렀다.
(중략)
"너 여기서 뭐 하니?"
"예?"
"알리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여기에 있으면 어떡하니?"
선생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오줌을 누는데 나비 한 마리가 창문 밖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처음 본 나비였는데. 그 나비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했어요."
알리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비를 따라가다가 그만 놓쳐버렸어요."
혹시나 이 근처에 있나 싶어 찾으러 다니는 중이었거든요."
"이 녀석아! 나비가 궁금하면 학교 끝나고 가야지 수업 시간 중에 가면 어떡해?"
"선생님, 저는요......"
"그래 왜 그랬지?"
"아이 참, 선생님은...... 수업 시간은 내일도 있잖아요."
(중략)
"나비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잖아요."


알리를 닮은 그놈은 2학기가 끝나기 전, 전학을 갔다. 나는 녀석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아마 그땐 쑥스럽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떠나간 그놈이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 참 고마웠다 보다. 다시 녀석을 만나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때 참 고마웠어."


생각해보니 난 그놈의 이름도 모른다. 그놈은 떠나기 전 내게 마지막 선물을 주었다. 우린 가을운동회 학년 대표 계주 선였다.  마지막 앞, 녀석은 마지막 주자였다. 그날 나는 경기 도중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뒤늦게 바통을 이어받은 녀석은 전력질주해 상대편을 추월했다. 그렇게 우리팀은 1등을 차지했다. 그때 넘어진 무릎에 큰 상처가 났다. 아직도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흉터를 보면 녀석이 떠오른다. 그때 녀석에게 고다고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열두 살 우리는 어렸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친구하고 헤어질 때 어떤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런 경우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다가올 날들을 위해 어떤 기약을 해야 하는지 어른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 친구 김판수, 알리와 헤어질 무렵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날 밤에 그 애가 말했던 '난 아직 몰라'라는 한 마디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가슴 한쪽이 따끔거린다.

(중략)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문제 삼은 H 중공업은 7년에 걸쳐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 121명에게 20억 원에 가까운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노동조합은 조합비 전액을 가압류 당한 것은 물론 임금, 상여금, 퇴직금, 월차수당 등 회사에서 받는 임금의 절반을 가압류 당했다. 심지어 김판수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살고 있는 아파트마저 가압류 당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김판수 위원장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혼자서 크레인 고공 농성을 선택했다.

그는 35미터의  공중에서 경찰에 의해 개처럼 끌려가는 동료들을 내려다보았다. 동료들은 울부짖고 있었다. 그게 김판수 노조위원장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었다.

-나비 中-



지금은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를 그때의 추억들, 이젠 다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날의 알리, 그놈을 기억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참 멋진 사람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


우릴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큰 힘을 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사랑했던 당신과의 추억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지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운 마음이

넘을 수 없는 큰 물결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당신을 사랑했던 마음으로

가슴에 큰 강을 키우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당신을 기억하며

잔잔한 미소를 지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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