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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y 14. 2022

'욕망'이라는 얼룩 바라보기

   마음의 거울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 욕망 앞에 선다. 다르게 말하면, 욕망의 물감이 칠해진 거울을 바라보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수많은 욕망이 우리를 자극한다.


미디어들로부터 나오는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이야기들.


욕구를 자극하다 못해 증폭시키는 이미지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쏟아지는 비난의 말들.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쏟아지는 습관과 자랑들.



이들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걸까. 이들을 다 수용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더 많은 욕망을 품고 그에 비례하는 만큼 소유하면 진정 행복할까.


계속 이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어가면 결국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작은 경험에서도 느낄 수 있다. 욕망을 내려놓고 거기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내면의 목소리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에 집중할 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것을.


하지만 현실 속에 사는 우리는 욕망을 완전히 등지고 살아갈 순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욕망에 물든 나의 거울을 자꾸 들여다보고, 또 욕망의 모양을 살피고 하루하루 닦아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람의 마음에는 알게 모르게 매일 먼지가 쌓인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에 의해 말이다. 그리고 그중 팔 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욕망이 들어왔을 때, 잠시 생각을 멈추고 깊게 호흡을 들이 셔보자. 욕망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얼룩진 나의 거울을 바라보자.



그 속의 당신은 웃고 있는가.

아니면 울고 있는가.

혹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진 않은가.
바라보고 또 바라보자.  


끝으로, 읽을 때마다 내 거울을 바라보게 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 한 편을 공유하며, 이 아침을 마무리한다.




참회록

-시인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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